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기차여행을 하다 본문
총동문산우회의 기차 등산 여행이 있는 날이다. 5시쯤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배낭을 챙긴 후 집결지인 백운역으로 가기 위해 집 앞 만수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이른 새벽이라서 승객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평소 내가 잠든 시간에 이렇듯 많은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그간의 생활이 잠깐 부끄러워졌다. 환승을 위해 주안역에 내렸을 때 플랫폼에는 배낭을 멘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6시35분, 백운역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동문들이 운집해 있었다.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 기수는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를 했기 때문에 기차의 맨 앞 칸으로 배정되었다. 부부가 동반한 커플이 10여 커플, 나는 맨 앞에 혼자 앉아 잠을 자려고 했으나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시작된 술판 때문에 잠자기를 포기했다. 목적지인 충주 오봉산까지 가려면 세 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니 그 무료한 시간을 술판으로 보내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동참, 기차 안에서 부인들이 싸온 다양한 안주와 술을 마시니 술맛도 좋고 취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기차에는 화장실도 있으니 주당들에게는 술 마시기 안성맞춤인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쯤 이미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친구들이 다수였다. 부인들도 오늘만큼은 남편들의 그러한 일탈 아닌 일탈을 눈감아 주는 것 같았다. 서너 명은 남자들과 더불어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목적지인 상탄 역에 도착했을 때, 이국적인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볕도 좋고 바람도 훈훈해서 등산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동문들과 그 가족들은 난이도가 각기 다른 세 개의 코스 중 자신에게 맞는 코스를 선택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와 서너 명의 일행들은 산행을 하지 않고 강변에 앉아 쉬기로 결정하고(이것이 C코스였다.) 적당한 곳을 찾아 돗자리를 폈다. 산행 프로들인 친구가 데려온 여성들도 웬일인지 이번에는 산에 오르지 않고 우리 일행을 따라왔다. 그리고 다시 안주가 배설되고 술잔이 돌았다. 완전히 야유회였다. 친구 하나는 어디서 구했는지 어망을 가져와 강가로 내려가 이곳저곳을 휘적거렸다. 모두가 소년들처럼 들떠있었다. 그렇게 술 마시고 산책하며 서너 시간을 보내자 점심시간이 되었고 주최 측에서는 비빔밥을 준비해서 나눠줬다. 그때까지도 A코스 산행 팀은 하산하지 않고 있었다. 산책 팀들이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실 때쯤 산행 팀들이 운동장에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음식이 남아 있지 않아서 투덜거리긴 했지만 모두다 표정들은 밝았다. 산행 팀들까지 식사를 모두 마치고 뒷정리를 한 후, 운동장에 모여 기수별 소개와 모범 동문 시상 등간단한 행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다섯 시, 다시 대기 중인 기차에 올라 인천으로 향했다.
나는 기차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어 두어 시간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 친구들은 남은 술을 끝장내기 위한 혈투를 벌인 모양이었다. 깨어나서 보니 모두들 혀가 꼬부라져 있었다. 정말 징그럽게들 마셨다. 마치 술에 걸신들린 사람들 같았다. 나도 한 술 하지만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기차는 연착을 거듭하다 9시30이 되어서야 백운역에 도착했다. 인천의 밤바람은 상당히 매서워져 있었다.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한 시간, 10시 20분. 그때까지 어머니는 주무시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오늘 뭘 하고 온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 샤워를 하며 혼자 킬킬대며 웃었다. 거실에 있던 어머니는 영문도 모르면서도 내가 킬킬대자 함께 웃으셨다.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많이 만난 날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책상 앞에 앉자 ‘나도 산을 올라갔다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다. 그 생각 때문이 새삼스러워 지금도 히죽거리고 있는 중이다. 이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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