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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여름의 다정함은 반갑지가 않아 (7-7-월, 맑음) 본문

일상

여름의 다정함은 반갑지가 않아 (7-7-월, 맑음)

달빛사랑 2025. 7. 7. 23:11

 

연일 폭염(暴炎)이다. 휴대전화로 전달되는 폭염주의보 안전 문자가 연일 도착하고 있다. 더위로 목숨을 잃은 사망 사고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대체로 시골에서 밭일하던 노인들이 일사병으로 목숨을 잃은 경우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덜 더운 아침부터 밭에 나와 일하던 시골 노인들이 시간이 지나며 가파르게 상승한 기온을 감당하지 못해 탈수, 탈진해서 의식을 잃었다가 결국 사망한 것이다. 한낮의 습한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한증막을 방불케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생사(生死)는 정말 한길 가는 친구인 게 맞는 모양이다. 옛 어른들의 말처럼 대문 밖이 저승이다. 죽음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점심에는 사무실 식구들과 오랜만에 양평해장국을 먹었다. 오늘따라 내 해장국에는 선지가 유난히 많았다. 흡사 선짓국에 양(소의 첫 번째 위)이 들어가 있는 형국이었다. 앞에서 식사하던 김 목사는 내 국그릇을 보더니 “주방장이 문 특보님을 특별히 챙겨줬나 봐요” 하며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봐도 다른 때보다 선지의 양이 많았다. 선짓국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일상에서 이런 사소한 행운(?)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예를 들어 농심 ‘너구리’ 봉지 안에 다시마가 2개가 들어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렇다. 또 달걀을 깼을 때 노른자가 두 개면 기분이 좋다. 그게 뭐 대수냐며 비웃을 수 있겠지만, 일상의 사소한 일에 기쁨을 느끼며 사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은 일 아닌가?

 

오후에 혁재에게 신 아무개 선생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6시 퇴근 후, 바로 청사 뒤편 정거장에서 33번을 타고 인하대병원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연극쟁이 후배 병균을 만나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분향소 안에서는 고인이 다니던 성당 신부님과 신도들이 사망 미사를 올리고 있었다. 조문을 잠시 미루고 접객실로 이동해 먼저 와 있던 후배들과 합석해 식사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자운 누나가 왔고, 연이어 산이와 혁재가 들어왔다. 9시를 30분쯤 미사가 끝난 분향소로 이동해 조문했다. 그리고 10시쯤 귀가하려고 일어나자, 후배들도 모두 따라 나왔다. 혁재와 로미는 더 머물다 오겠다며 지하로 내려갔다.

 

근직, 병균, 산이, 홍이 등 후배들은 한잔 더하겠다며 신포동으로 이동했고, 나는 (같이 가자는 후배들의 권유를 거절하고) 장례식장 앞에서 33번 버스 타고 시청까지 와서 시간 절약을 위해 전동차로 갈아탔다. 33번 버스도 우리 동네까지 오지만, 집에서 제법 떨어진 전병원 앞에서 정차한다. 게다가 33번은 구월동을 거쳐 선수촌 아파트까지 에둘러 오는 노선이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갈아탄 이유는 그 때문이다. 더운 날씨에도 만수역 주변 술집들은 무척 붐볐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등줄기로 땀이 주르르 흘렀다. 집 앞에 도착해서 아이스크림 한 통을 샀다. 기어코!

 

샤워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뉴스를 보았다. 그리그의 ‘페르 귄트 조곡’ CD를 걸어놓고 들으려다가 피곤이 몰려와 그만두었다. 그리고 에어컨 온도를 내리며 문득 여름의 살가움을 믿지 말기로 맘먹었다. 물론 여름은 내게 특별히 불친절한 적이 많지 않다. 아니 오히려 여름은 자주 살가웠다. 그러므로 나와 여름의 데면데면한 관계는 여름의 책임이 절대 아니다. 다만 나와 여름은 서로 부합할 수 없는, 본원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여름도 나도 서로의 불행을 조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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