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아름다운 5월을 완성하기 위한 전제 (5-6-월, 비) 본문
5월은 아름답습니다. 온갖 꽃으로 화려했던 완숙해진 봄이 꽃잎을 버리고 푸른 잎을 내밀며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가는 징검다리 계절입니다. 독일 시인 하이네는 5월을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에도 사랑의 꽃을 피우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달이라고 표현했고, 또 감미로운 바람과 따스한 햇살, 푸른 하늘은 가히 여왕의 품격에 걸맞은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해서 뭇사람들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가족끼리 소통하고 돈독한 사랑을 나누라는 의미에서였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5월이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물론이고, 5월의 한복판에는 스승의 날도 있고 며칠 뒤에는 부부의날도 있습니다. 만약 여유롭고 아름다운 날들만 펼쳐진다면, 생각 같아서는 일 년 내내 5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5월은 숨이 가쁩니다. 또한 우리의 5월은 자주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5월은 우리에게 각자의 삶과 이웃들의 처지, 발 디디고 있는 현실 속의 관계들을 꼼꼼하게 되돌아볼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5월의 첫째 날은 전 세계 노동자들이 자신의 지위와 권리를 되돌아보는 국제노동절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들 또한 노동절이 만들어진 의미와 노동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날이기도 합니다. 과연 이 땅의 노동자들은 현재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인정받고,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있는 걸까요? 차별 없는 노동권은 보장되고 있을까요? 대답은 회의적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이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연간 2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노동 현장에서 사고로 희생되고 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노동자들에게는 5월이 그저 아름다운 계절일 수만은 없을 겁니다.
어린이들의 현실은 어떤가요? 한 나라의 미래를 가늠해 보려면 그 나라의 어린이가 어떠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어떤 교육적 상황과 복지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어린이는 누구나 배우고 누릴 권리, 필요한 영양을 섭취할 권리,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자신만의 고유한 꿈을 키울 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굶주리고 학대받는 어린이들이 많다는 통계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어버이날의 풍정도 옛날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버려지는 부모, 학대받는 부모, 합법적(?)으로 방치되는 부모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예전과 같은 방식의 효를 요구하는 건 시대착오적이거나 무모한 바람일 수도 있겠지만, 마음보다는 물질로, 정성보다는 편의로 어버이날의 ‘귀찮은 의무감’을 상쇄하려는 풍조가 만연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스승이란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의 삶 속, 가르침이 필요한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스승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직 교사들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얼마 전에 학부모의 갑질 때문에 목숨을 끊은 교사도 있었고, 학부모는 물론이고 학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교사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교권의 추락은 물론이고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위협받고 있는 형국입니다.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성급한 일반화가 아닙니다. 최근 각급 학교에서 교권보호위원회를 앞다투어 발족시키고 있는 이유도 그만큼 교사들이 현장에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슬픔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곤 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수많은 광주시민의 아우성이 환청처럼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4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날의 기억은 좀처럼 잊히질 않고 오히려 세월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기 일쑤입니다. 그날 광주시민들은 왜 자유와 민주주의가 소중한 것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록 시민들의 억울한 희생과 민주주의 훼손에 대해 책임 있는 반성이나 양심선언을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를 올곧게 지켜내는 게 남은 사람들의 책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자꾸만 먹먹해지는 건 그 때문입니다.
5월은 분명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그러나 꽃과 나무와 푸른 잎과 적당하게 청량한 바람과 숱한 시인, 가객의 헌사로 윤색된 5월 말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5월을 우리 스스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배우고, 노동하고, 연대하며 온갖 부조리와 치열하게 싸우고 끝까지 감시하며 깨어있어야 합니다. 5월의 주인은 우리입니다. 우리 모두 5월의 온전한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어린이도 어버이도, 선생님도 노동자도, 그리고 5월 항쟁의 넋들도 힘과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5월을 완성하는 전제이고 5월을 가슴에 품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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