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가을아, 머뭇거리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오렴 (8-28-월, 비) 본문
아침부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가을가을 내렸다. 기온도 한껏 내려가 더위 타는 나조차 반팔로 거리에 나서니 썰렁하게 느껴졌다. 오전에는 정년퇴임하는 고위직들이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얼굴로 사무실마다 찾아다니며 인사했다. 안면만 있을 뿐인 그들의 전도가 평탄하고 양양하기를 기원해 주며 나는 12시로 예약된 치과 진료를 위해 청사를 나왔다. 청사에서 치과까지 3 정거장, 버스나 지하철을 탈까 하다가 그냥 걷기로 했다. 비가 내렸지만, 우산을 흔들어대거나 물이 들이칠 만큼 거센 비가 아니어서 걷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땀도 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빗속을 걸으니 기분까지 좋아졌다.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며 가끔 콧노래도 하고 혼잣말도 하며 병원까지 걸었다. 청사 후문에서 병원까지 20여 분 걸렸다.
병원에 들러 지난 금요일에 식립한 임플란트 상태를 확인하고, 저작할 때마다 왼쪽 볼이 씹히는 문제를 해결했다.(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지만 원장인 닥터 용이 손을 봐줘서 그나마 많이 편해졌다. 어금니 발치 후 후속대책 없이 오래 방치했기 때문에 피부가 늘어져 그런 거라고 했다. 불쌍한 나의 볼따구니) 그리고 오른쪽 어금니 임시 치아를 만들기 위해 구강 카메라로 3D 스캔을 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옛날처럼 뭔가 물컹한 밀가루 반죽 같은 물질을 입에 넣은 후 콱 깨물어 본을 뜨는 게 훨씬 간편하다. 이 3D 스캔 작업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계속해서 입을 벌리고 있거나 혀를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괴롭다. 하지만 내 입 안의 구조와 치열, 상악과 하악의 균형 등을 정밀하게 확인한 후 임시 치아를 제작하기 때문에 그만큼 결과물은 오차 없이 잇몸에 딱 맞게 될 것이라 믿는다. (다만 아무리 임시치아지만 뭔가 플라스틱 같고, 싸구려 같고..... 원래 다 그런 건가? 이물감이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최대의 장점은 엄살이 별로 없어 웬만한 통증이나 힘든 상황을 잘 참아낸다는 것, 의사들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환자일 것이다.
그나저나 원장님이 치위생사들에게 내 7번 치아와 관련하여 "1번 문계봉 환자분에게 '~를' 교환해 주세요"라고 뭔가 오더를 준 것 같은데, (누워있던 내 귀에 똑똑히 들렸다) 내 잇몸을 스캔한 위생사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나 모르는 사이에 귀신처럼 처리한 건가, 아니면 원장님의 오더를 깜빡한 건가. 뭐, 아프지만 않으면 상관없지만……
혈당측정기 세트를 또 하나 구매했다. 지금까지 총 3종류를 구매한 것이다. 공무원 복지 포인트가 많이 남아 있어서 마지막에는 유명한 제품으로 구매했다. 사실 다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소비자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고 어플을 설치하면 검사 결과가 자동으로 휴대폰과 동기화되는 제품이다. 아무튼 측정기마다 측정값이 조금씩 다르므로 3대의 평균치를 내볼 생각이다. 오차가 큰 기계의 측정값만 철석 같이 믿고 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도가 떨어질 바에는 차라리 병원에서 정맥혈로 확인하는 정확한 혈당값보다 높게 나오는 게 오히려 낫다. 그래야 긴장한다. 만약 자신의 실제 혈당보다 낮게 나오거나 정상 수치로 나올 경우, 그동안 관리를 잘해서 정상이 되었다고 착각하거나 관리가 소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을 맞아 티셔츠 3벌을 구매했다. 마침 인터넷 의류몰 '무신사'에서 내가 무척 좋아하는 브랜드 스톰 런던이 세일(7만 원짜리 옷을 15,000에 각각 구매) 하고 있었다. 올해는 나 자신을 위해 돈을 펑펑 쓸 생각이다. (하하하! 사실 펑펑 쓸 돈도 없긴 하지만 말이라도 이렇게 하니 기분은 좋다) 담배도 끊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있으니, 한 달에 40~50만 원이 세이브된다. 그 돈을 건강 먹거리 구매나 내 삶을 향기 나게 만드는 일에 쓰려고 한다. 천년 만년 살 것도 아닌데, 너무 아끼다가 정작 몸이 망가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면 돈이 많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오늘처럼 순하게 비 내리는 날이면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
그러니 가을 척후들아, 이제 더는 머뭇거리지 말고 당당한 모습으로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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