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또 한 명의 명민한 소설가 하늘에 들다 (12-27-화, 맑음) 본문
70년대 유신 정권하에서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이 당하던 억압과 착취의 실상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낯설면서도 신선한 소설 형식으로 형상화하여 한국 소설은 물론 노동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께서 안타깝게도 우리 곁을 떠나 하늘에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의 소설을 읽고 내가 느꼈던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일단 나는, 작가가 그려낸 소설 속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상황이 선진국 진입을 앞에 두었다고 자화자찬하던 당시의 대한민국에서 과연 가능했던 일일까 의심하며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는 제도권 교육을 통해 학습한 이 땅의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에 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 선배 동료들과 세미나를 하면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억압의 실상을 학습한 후에는 조세희 선생의 소설이 다시 보였다.
또한 기존 소설의 문법으로는 무척 낯설게 읽혔을 게 분명한 이 작품은 환상적인 느낌의 우화적 형식으로도 당대의 현실을 무척 핍진하고 신랄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도식적 사실주의에 경도되어 있던 한국 문단에 당당하게 제시했다. 즉 부조리한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는 작가적 용기와 문학적 성취는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사회와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세계관의 문제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는 한때 소설(문학)만으로는 미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절필을 선언하고 카메라 한 대만 달랑 들고 탄광이나 빈민촌 등 소외된 노동자와 민중이 있는 곳으로 직접 들어갔다. 그러한 연대와 실천의 결과물로 나온 사진집이 바로 사북의 탄광 노동자들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은 『침묵의 뿌리』다. 그를 단순히 소설가의 범주에 묶어둘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조세희 선생이 소설을 통해 고발한 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가 허다하고, 노동자들의 곁에서 그들의 현실을 사진으로 담아가며 꿈꿨던 아름다운 세상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우리의 숙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확대 재생산하고자 하는 수많은 독자와 양심적 시민들이 존재하는 한 그 숙제는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조세희 선생님, 이제 남은 우리가
그 모든 숙제와 실천의 의무를 감당하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한 시대를 살 수 있어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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