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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파란색 비니 (12-20-화, 맑음) 본문

일상

파란색 비니 (12-20-화, 맑음)

달빛사랑 2022. 12. 20. 22:13

 

오션블루 색상의 비니를 하나 더 구매했다. 오랜만에 구매한 파란색 계열 비니다. 30~40대 시절에는 붉은색이나 파란색 티셔츠를 자주 입고 다녔다. 붉거나 파란 티를 입을 때마다 엄마는 “잘 어울린다. 아범 얼굴이 사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엄마는 내가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는 걸 좋아하셨다. 가장 화려해야 할 20대 때 나는 오히려 늘 검은색 티셔츠나 국방색 야전잠바, 쥐색 바바리, 기껏해야 카키색 바지 등 칙칙한 색상의 옷만 입고 다녔는데, 엄마는 그게 참 못마땅하셨던 것 같다. 사실 당시에는 알게 모르게 운동권 인물의 복장은 튀거나 값비싸면 안 된다는 나름의 묵계가 있었다. 혁명가들이 수수한 인민복을 입는 것과 같은 이유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환한 색상의 옷을 과감하게 입기 시작했다. 노동운동 조직에서 나온 후 학생들을 가르칠 때 복장에 특히 신경 썼던 것 같다. 학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려면 복장에서부터 위화감이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소 비싸도 메이커 제품이 몸에도 잘 맞고 질도 좋으며 일단 디자인이 다채로워 맘에 들었다. 사람들이 명품을 선호하는 것은 꼭 허영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물론 내게는 명품이 언감생심이었지만.

 

어린 학생들과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40대부터는 나이에 비해 옷을 잘 입는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지금도 50~60대 아저씨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색상이나 디자인의 옷을 과감하게 입곤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모양이다. 또한 코디를 잘한다는 칭찬도 듣는다. 사실 패션 전문가가 아닌 내가 잘 입어봐야 얼마나 잘 입겠는가. 나는 통념에 개의치 않고 말 그대로 ‘그냥 무조건 입어보는 것’이다. 내 또래 친구들도 같은 옷을 과감하게 입었다면 오히려 피부색이 희고 고운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멋쟁이 소리를 들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50~60대가 저런 옷을 입어”라는 선입견 때문에 화려한 색상, 특이한 디자인의 옷을 입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나는 편견과 겁이 없다. 그래서 수십만 원짜리 옷을 입은 친구들보다 몇만 원짜리지만 내 나름대로 코디한 옷을 입은 나의 모습이 훨씬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또 하나, 옷은 일단 편안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달리 생각한다. 약간 불편해도 멋진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멋을 선택할 것이다. 그다음이 편안함이다. 물론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옷이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나는 멋이다. 다행히 요즘에는 멋과 편안함을 모두 갖춘 옷들이 많긴 하지만 확실히 가격은 장난이 아니다.

오리털 파카만 해도 그렇다. 중저가 제품 중에도 디자인이 예뻐서 입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옷들이 많다. 다만 상당수의 제품이 무겁고 통풍성이 떨어져 파카 안에 입은 옷에 땀이 배인다는 것이다. 당연히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밀레, 필라, 르카프, 리복 등과 같은 유명 메이커 중에서도 10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는 제품들이 부지기수다. 반면 코오롱이나 노스페이스, 나이키 등에서 나온 제품들은 가볍고 통풍성이 좋아 추위를 완벽하게 막아주면서도 옷에 땀이 배질 않는다. 아웃도어로 따지면 고어텍스인 셈이다. 하지만 가격은 앞서 말한 제품들의 두세 배가 넘는다. 디자인도 예쁘고 기능적이며 가벼우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다만 가격이 문제일 뿐이다. 지난가을에서 올겨울까지 서너 벌의 티셔츠와 오리털 파카, 신발 두 켤레, 고급 양말 10켤레, 비니 두 개를 구매했다. 이 정도면 비교적 올해는 옷과 신발에 많이 투자한 셈이다.

 

나이가 들수록 추레해 보이는 걸 견딜 수 없다. 주름은 늘고 머리숱은 줄고, 피부는 거칠거칠해지는데 입성마저 추레하다면 자신의 의중과는 무관하게 지인들에게 연민의 대상이 된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연민의 대상까지 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오래전에 읽은 홍윤숙 시인의 시 '장식론'에는 "여자가/장식(裝飾)을 하나씩/달아가는 것은/젊음을 하나씩/잃어가기 때문이다"라는 시구가 있다. 이게 어디 여성에만 해당하는 일이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시인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물론 외형적인 액세서리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도 당연히 신경 써야겠지만, 형식이 내용을 규정할 때도 있는 법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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