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두 건의 송년회 (12-22-목, 맑음) 본문

신포동 모 소극장에서 해당 극장 후원회가 주최하는 송년회가 있었다. 소모임 성격의 특정 후원회가 주최하는 송년회에 어떤 이유로 시장과 교육감, 지역 문화재단 이사장 등 문화계 인사들을 대거 초청했는지 의아했지만, 후원회 회장을 맡은 분이 나름 유명한 인천의 원로급 인물이다 보니 교육감으로서는 그의 초청을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혹시 인천의 토호와 원로들이 자신들의 가계(家系)와 지난 이력들을 부각하는 과정에 각급 단체장이나 대표들의 명망성이 필요했던 것일까. 혹은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걸 강조하고 싶은 대표의 호승심이 표출된 것일까? 이러저러한 궁금증이 일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세상이 험하다 보니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렇듯 자꾸 의도를 헤아리게 된다. 젠장! 나는 이래서 문제다)
아무튼 교육감이 참석하니 문화예술 특보인 나 역시 참석하지 않을 수 없어 사전 약속이 있었지만, (귀중한) 시간을 쪼개 '송년회장'을 찾았던 것이다. 다행히 참석자들 대부분이 아는 분들이었고, 소극장 대표 역시 친한 후배라서 송년회 자리 자체는 어색하진 않았다. 후배에게는, 혹시 후원을 계기로 힘든 연극보다는 후원회가 요구하는 편한(?) 행사에 경도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 말도 하지 않았다. 산전수전 겪은 친구니 알아서 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막도 모르면서 할 얘기는 아니지 않은가? 후배가 예술가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다면 나의 기우일 것이다.
후원회 회장님은 자신의 가계와 소극장과의 인연을 장황하게 강조했는데, 그 시간이 내게는 솔직히 지루했다. 그분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현재 소극장 자리가 자신의 선친이 병원을 운영하던 자리였고, 우리들이 모여 송년회를 하고 있던 '사랑방' 공간은 회장님이 태어나고 자란 방이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팔순이 넘은 그가 자신의 가계와 소극장과의 인연을 극적으로 여기며 강조하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이후,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바람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다음 일정이 있는 나는 연신 시계를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6시쯤 소개를 겸한 1차 모임이 끝이 났고, 곧바로 2차 프로그램인 인문학 강좌가 진행됐으나 나는 양해를 구하고 먼저 극장을 나왔다.


오늘은 함께 노동운동했던 옛 동지들을 만나는 날, 장소는 구월동 갈매기, 약속 시간은 6시. D 극장에서 나온 후 신포시장 정류장에서 45번 버스를 타고 구월동으로 건너왔을 때는 7시,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쯤 늦게 민중연합 동지들이 모여 있는 갈매기에 도착했다. 별실의 문을 열자 "어서 와요!" 하는 환호성, 반가웠다. 추위 때문일까 얼핏 봐도 예년보다 모인 인원이 적었다. 대체로 인천에 살고 있는 동지들만 모인 것 같았다. 하긴, 코로나에 한파, 폭설까지, 참석을 망설이게 할 요인들은 많았다. 아쉽지만 그나마 몇 명이라도 이렇듯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옛 동지들이 1년에 한 번 모여 안부를 나누고 신영복 달력을 나눠가진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다들 무탈하게 살다가 오늘처럼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왜냐하면 1년 사이에 유명을 달리했거나, 부모나 배우자를 잃은 동료도 있고, 병을 얻어 현저하게 몸이 축난 동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민중연합에서 활동했던 게 벌써 30년 전이다. 당시의 청년들은 이제 장년이 되었고, 그 당시 장년들은 작고했거나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는 중이다. 이 모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분명 모임이 이어질수록 점점 참석하는 사람이 줄어들 건 뻔한 일이다. 지리산에 있는 황선진 의장은 인터넷 화상전화로 실시간 건배사를 해주었다. 뜻깊은 순간이었다.
2차는 갈매기 바로 앞집인 인천집에서 가졌다. 오늘은 인천집이 갈매기보다 한산했다. 술값은 가장 늦게 도착한 나준식 선배가 계산을 했다. 인천집을 나왔을 때, 다들 술이 별로 취하지는 않았지만, 3차를 가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예년 같았으면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을 텐데 날이 너무 추웠기 때문일까. 일행들은 서둘러 인사하고 각자 대리를 부르거나 카카오택시를 불러 하나둘씩 귀가했다. 나와 창수 형, 정아 등 3명은 택시를 기다리다 너무 추워 상가 입구 순댓국집에 들어가 몸도 녹일 겸 해서 국밥과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그곳에서 창수 형은 택시를 불렀고, 나와 정아는 택시가 안 잡혀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30분, 이제 모두 추위와 어둠을 두려워할 나이가 된 것일까. 모임 역사상 가장 일찍 파한 날이다. 이제 몇몇을 제외하면 1년 후에나 다시 볼 사람들..... 모두 무탈하게 귀가해 따뜻한 집에서 좋은 꿈 꾸기를....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꽁꽁 얼어붙은 크리스마스이브 (12-24-토, 맑음) (0) | 2022.12.24 |
---|---|
그날, 그 눈 내리던 백마역을 추억하다 (12-23-금, 맑음) (0) | 2022.12.23 |
"뽀드득 뽀드득!" (12-21-수, 눈 오고 종일 흐림) (0) | 2022.12.21 |
파란색 비니 (12-20-화, 맑음) (0) | 2022.12.20 |
권리와 배려, 그 사이 어디쯤 (12-19-월, 오후에 흐리고 눈발) (0) | 2022.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