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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아들 생일 (9-9-金, 맑음) 본문

일상

아들 생일 (9-9-金, 맑음)

달빛사랑 2022. 9. 9. 00:44

 

아들의 서른 번째 생일이었다. 아버지로서 선물도 편지도 주지 못했다. 얼마 전 내 생일에 아들은 연락이 없었다. 수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선물이나 용돈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단지 한 통의 전화를 기다렸던 것인데, 끝내 연락이 없어 조금 서운했던 기억이 있다. 어젯밤 전화한 아들은 그간 직장의 편제가 재편되기도 했고, 그래서 일이 많았고, 코로나에 확진되기도 했으며, 테니스와 골프 등 직장 내 동호회 활동을 새롭게 시작해 정신없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일 텐데, 아들의 변명(?)을 듣는 순간 “전화 한 통 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하며 서운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아들은 “앞으로는 자주 연락할게요.” 하며 웃었다. 아들의 (멋쩍어한 게 분명한) 웃음소리에 서운했던 마음이 이내 누그러졌다. 아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저 자식의 안부가 궁금하고 자식의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다.

 

전화의 경우, 나도 걸려 오는 전화를 자주 받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쉽게 전화하는 성격도 못 된다. 휴대전화 통화목록을 보면 발신 전화는 대부분 공적인 일이거나 직장 동료들과 업무와 관련해서 나눈 대화다. 수신 거부 목록도 많다. 뭔가를 하고 있거나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의도가 뻔한 전화는 대체로 받지 않는다. 친하지 않아서 안 받는다기보다는 외출하기 싫은데 불러내는 전화, 술 마시기 싫은데 술 마시자는 전화, 너무 수다스러워 피곤한 지인의 전화는 가끔 의도적으로 받지 않는다. 그리고 딱히 설명할 수 없는, 그냥 그 누구의 전화도 받기 싫을 때가 있다. 자신을 철저하게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만 해도 장과 오, 두 사람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두어 시간이 지난 후, 전화받지 못한(사실은 받지 않은 것이지만)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 문자를 보냈다. 아들에게도 혹시 그런 마음의 상태가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싫어서가 아니라 상황이 강제하는 모종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기로 했다.

 

성인이 된 후 특별한 사고 없이 제 갈 길을 스스로 찾아 올곧게 가고 있는 아들이다. 특별히 해준 게 없는 아비로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이 서른이 넘었지만 취직도 못하고 캥거루족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점에서 아들은 나에게 크나큰 마음의 부담을 덜어준 셈이다. 나는 아비로서 남들처럼 많은 물질적 재산을 물려주진 못했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가를 보여줬다고 자부한다. 생일 맞은 아들이 그 무형의 재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아주었으면 한다. 능력 없는 아비의 이기적인 바람인 줄 알고 있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는 게 나의 ‘아홉 켤레의 구두’, 즉 마지막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30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도 계속 몸도 마음도 건강한 성인으로 살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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