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장마 전선은 일시적으로 남하했지만.... (8-11-Thu, 맑음) 본문
장마전선이 일시적으로 남하하여 수도권에는 잠시 볕이 들었다. 공기는 약간 습했지만, 확실히 더위는 한풀 꺾인 듯해 보였다. 이재민들은 집과 가게 안을 휩쓸고 간 흙탕물의 잔해를 청소하고 물에 젖은 가재도구들과 이불, 옷가지를 말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생사를 오간 시민들의 인터뷰가 뉴스에서 흘러나왔다. 어떤 정신나간 여당 의원은 보여주기식 봉사를 나와서 "비가 좀 왔으면 좋겠어요. 사진 잘 나오게"라는, 정말이지 무개념을 넘어 천인공노할 발언을 해 이재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고, 봉사활동은 제쳐두고, 좁은 통로를 막아선 채 기자들 앞에서 장시간 연설하다 성난 시민들에게 욕설을 듣는 같은 당 출신의 또다른 정치인의 모습도 화면에 보였다. 코미디도 그런 저질, 아니 악질 코미디도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재민의 고통보다 여론 환기를 위한 보여주기식 봉사활동이 훨씬 중요한 듯 보였다. 하지만 이런 함량 미달 정치인을 뽑아 준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 지역의 주민들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에게 투표한 자신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을 것이다.
남하한 장마는 충청도와 전라 북부 지역을 강타해 그곳에서도 수많은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는 중이다. 예보에 의하면 이번주 일요일과 다음주 초에 장마전선은 다시 북상해 수도권에 물폭탄을 퍼부을 거라고 하는데..... 복구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재민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한번 호되게 당해 봐서 다음번 폭우에는 제대로 대응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모를 일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걸 기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좋은 방탄조끼를 얻었다고 꼭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쏴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이번 장마는 반도의 허리를 오르내리며 우리의 삶터를 모질게도 유린하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갈매기에서 혁재를 만났다. 볼 때마다 얼굴이 수척해 보여 걱정이 된다. 본인은 건강에 별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길 바라긴 하지만, 매일 갖는 술자리가 몸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얼굴 보니 반갑고 좋았다. 다만 갈매기 사장이 맛이 살짝 가버린 송명섭 막걸리를 골라준 탓에 기분이 찝찝했다. 날짜를 보니 유통기한이 며칠 지나 있었다. 상한 것이 분명해 직접 마셔보라고 했더니, "아, 여름에는 이 정도 맛이 간 막걸리는 양호한 편이오. 먹어도 전혀 문제가 없어요"라며 그냥 웃기만 할 뿐 새 막걸리로 교환해주지 않다가, 내가 마실 때마다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때서야 비로소 주전자를 가져와 새 막걸리 한 병과 먼저 내놓은 막걸리와 섞어주었다. 정도가 조금 덜해졌을 뿐, 여전히 군내가 났다. 술값이 아까워 그냥 마시긴 했지만, '단골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것인가', 속으로 약간 부아가 났다. 만약 단골이 아닌 손님에게 이 술을 내놓았다면 당장 항의가 들어왔을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반 주전자쯤 마셨을 때 혁재가 왔고, 그 술을 마셔본 혁재는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형, 이걸 어떻게 마셔요. 토할 것 같은데." 하는 것이었다. 순간 사장은 무척 곤혹스러워 했다. 결국 나머지 술은 버리고, 새로 소성주를 시켜서 마셨는데, 혁재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 술을 투덜대면서도 모두 마셨을 것이다. 사실 그건 배려가 아닌데.... 정확하게 지적해주고 잘못된 건 항의하는 게 장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인데.... 확실히 나는 소심한 A형이다. 배려와 방치를 자주 혼동하는..... 혁재가 아니었다면 투덜대면 귀가했을 것이다. 술집을 나와 나는 집으로, 혁재는 동화마을 산이네 집으로 각각 돌아갔다. 빗방울 간간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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