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내 마음속에 포도나무 한 그루를 키우고 싶다 본문
이육사 시인은 그의 시 '청포도'에서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노래하며 조국광복에 대한 소망을 푸른색과 흰색의 대비를 통해 절절하게 노래했다. 물론 그 시절, 민가의 담장이나 너른 들에 청포도 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래서 왜 시인은 그냥 보라색 포도 송이가 아니라 청포도를 소재로 했을까 궁금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한 포도 그 자체를 노래한 게 아니라 포도가 환기하는 모종의 의미를 활용하려 했다면, (그것을 통해 시인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면) 그 의도를 알 것도 같다.
그동안 포도는 그 탐스러운 송이송이가 환기하는 이미지 때문에 많은 시인들의 시 속에서 풍요의 상징으로 등장해 왔다. 장만영의 시 '달, 포도, 잎사귀'에서는 포도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중심소재로 기능한다. 그 이유는, 포도는 알맹이 하나가 씨앗을 품은 완결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완결된 세상'이 덕지덕지 달린 포도 한송이는 얼마나 큰 우주일 것인가. 이러한 우주적 상징을 머금고 있는 과일에 명민한 시인들이 관심을 기울인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단순한 과일로서의 포도가 아니라 그것이 비유하고 상징하는 다양한 의미들을 염두에 둔다면 포도는 풍요와 평화, 조화와 안정의 세계를 보여주는 의미의 집성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릴 때 살던 우리집 뒤란에도 포도나무가 두어 그루 있었다. 그리 많지도 크지도 않았던 포도나무에서 여름이면 어찌나 탐스럽게 포도송이가 매달리는지 어린 마음에도 나무에 매달린 포도송이를 경이감을 가지고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가게에서 파는 포도 만큼 달지는 않았지만, 뒤뜰의 포도는 함께 자라던 딸기와 더불어 가난한 시절 우리에게 고마운 간식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의 현실은 코로나와 나쁜 정치로 말미암아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 질곡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포도를 심고 싶다. 내 마음속 텃밭에도, 내가 아는 지인들의 마음속 텃밭에도 조화와 안정, 풍요의 의미를 머금고 있는 포도송이가 무럭무럭 자라난다면 지금의 그악스러운 세상은 조금은 덜 흉물스럽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이육사 시인이 자신의 시를 통해 청포도를 노래했듯이 작금의 이 거지 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나도 마음속에 풍성한 포도나무 한 그루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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