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평화로운 일요일, 정치만 개판! 본문
맨발로 거실과 주방을 돌아다닐 때 발바닥에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가 무척 고맙습니다. 고마움을 넘어 미안해질 때도 많습니다. ‘이렇게 포근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마치 내 몫이 아닌 호사를 누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곳저곳에서 한기를 견디며 하루를 버티는 노동자들의 치열한 삶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새벽 찬바람 속에서 파지를 모으는 노인들의 굽은 등과 힘겨워하는 두 다리를 볼 때는 내가 하루를 소일하는 방법과 내가 누리는 안락함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들 꽃을 사랑하고 싶지 않겠어요? 누군들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소박하지만 정겨운 식탁을 만나는 걸 싫어하겠어요? 누군들 향 좋은 차를 마시며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는 일을 좋아하지 않겠어요. 좋은 사람들과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만나고 싶을 때 누군가를 만나는 일, 원하지 않을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겁니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이 소박한 일상이 실은 절대로 소박하지 않은 게 오늘의 현실이고 자본주의의 민낯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과연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 이 그악스러운 물신주의의 시대에 과연 내가 누리는 행복, 가끔은 호사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이 여유에 대해 나는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지 묻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노동은 고공에 올라가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노동자의 핏빛 노동과 파지를 주워 모아 하루하루 연명하는 저 노인들의 힘겨운 노동에 비해 높은 가치를 지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지 않은데도 나는 따뜻한 방에서 느긋하게 지낼 수 있고 저들은 힘겹게 삶을 견뎌야 하는 거라면 그런 세상은 분명 잘못된 세상일 겁니다. 잘못된 세상에서 내가 누리는 호사는 결국 정당하지 못한 호사입니다. 누군가의 몫을 내 것으로 만든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현재의 삶을 모두 떨쳐버리고 노동자가 되거나 파지를 주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만 내가 누리는 소박한 행복, 상대적인 호사가 미안하다면 그만큼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시간을 허투루 낭비해선 안 됩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할 때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지고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마음조차 들지 않고 수시로 어려운 이들을 잊고 산다면 나의 행복, 나의 모든 호사는 이기적인 호사이자 누군가가 차려놓은 밥상에 그야말로 슬쩍 숟가락을 얹는, 무임승차의 얌체 같은 삶입니다. 하루하루를 엄중하고 진지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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