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추억은 역시 힘이 세다 본문
백신접종 후유증은 아직 없다. 점심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어깨의 통증도 사라졌다. 일부러 깍지를 끼고 스트레칭을 하지 않는 이상 뻐근함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건강하질 않기 때문인지 백신을 수용하기에 적합한 체질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순 다 된 나이에 별다른 후유증 없이 항체가 생긴다면 다행인 일이다. 큰누나의 생신을 맞아 작은누나의 제안으로 만수3지구로 넘어가 엊저녁이나 오늘 점심을 함께할 예정이었으나 내 접종 소식을 들은 큰누나가 만류하는 바람에 계획을 취소했다. 이런 정도의 증상이라면 함께해도 되었을 텐데 어른들의 만사 불여튼튼의 심정을 누가 말리겠는가. 안 그래도 3지구 넘어가는 게 내키지 않았는데,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려주듯 누나가 연락했던 것이다. 누님 두 분만 조촐하게 식사를 했다고 한다. 고맙게도 작은누나는 갈비탕 2인분을 가져다주었다. 저녁에는 누나가 가져다 준 갈비탕을 먹었다.
종우 형으로부터, 누군가가 갈매기를 지나다가 창문 바깥쪽에 선팅된 나의 시를 보고 혹시 내 연락처를 알 수 있겠느냐며 물어 왔다는 문자를 받았다. 종우 형은 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도 내게 문자로 보냈는데, 그 이름을 보니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오래전 내가 서구 살 때, 같은 교회를 다니던 청년회 선배였다. 7~8년 전까지만 해도 페북이나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가끔 안부를 확인하곤 했는데, 내가 카카오스토리를 그만둔 이후로는 통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물론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한 건 훨씬 오래전이다. 내가 서구를 떠난 후부터 보질 못했으니 어언 30은 된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잊지 않고 나를 기억해주니 고맙고도 짠한 일이다. ‘살아 있으면 반드시 만나게 돼’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그가 나에게 연락해 와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게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못 만난들 어떠리. 그는 내 이름을 보는 순간 잊고 있던 자신의 추억 하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서로 다른 결의 기억이라 할지라도 그때,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했다. 그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일치하지 않아도 문제 될 건 없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잠시 추억에 젖을 수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일 뿐. 아마도 그는 연락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만만하지 않은 세월을 건너뛰며 나를 추억할 만큼 강렬한 그리움을 느낀 건 아닐 테니까 말이다. 나의 이름(내가 아니라 나의 이름)을 통해 그는 자신의 추억을 환기한 것일 뿐이다. 나의 이름은 그의 추억을 환기하는 매개였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의 추억을 일깨워주는 이름으로 남았다는 것이 기쁘다. 나쁜 추억이 있었다면 굳이 술집 안으로 들어와서까지 내 연락처를 묻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나도 그를 통해 잠시 그때, 그곳, 그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때는 참 자신만만했었는데…… 젊은 아버지와 젊은 엄마가 있었고, 나에게는 붉은 심장과 푸른 꿈이 있었으니까. 또 한 번 느끼지만, 추억은 역시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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