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그의 쾌유를 빌며ㅣ닭백숙을 먹다 본문
일찍 일어나서 밥을 챙겨 먹고 뉴스와 유튜브를 보다가 다시 잠들었다. 점심때가 다 돼서 깨어난 후 오래간만에 공기질이 좋다기에 문이란 문은 죄 열어놓고 환기를 시켰다. 그러는 동안 후배와 통화했다. 노동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 중 하나가 척추에 마비가 와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우울했다. 더욱 우울했던 건 어쩌면 평생 휠체어에 의존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치열했으며 명랑했던 그에게 닥친 불행이 실감 나지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해 그의 증상을 찾아보았다. 특별한 사고나 충격이 없는데도 척추가 강직되는 증상은 대개가 유전적인 원인이라고 했다. 몇 년 전에는 시골에 내려가 텃밭을 일구며 평생의 소원이었던 농부의 삶을 살다가 얼마 전 올라와 다시 노동운동 현장으로 복귀한 그였기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 며칠 전 건설노조 위원장 선거 관련해서 지방에 내려갔다가 뒤풀이 중에 ‘풀썩’ 쓰러져 길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고 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증상이 이렇듯 치명적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의 아내 역시 잘 아는 후배다. 그녀는 현재 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는 현직 노동운동가이다. 내 아들 또래의 딸 역시 엄마와 함께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있다. 아들 S가 현재 병원에서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다. 문병 다녀온 지인들 말로는 여전히 환자 같지 않은 밝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맞고 있고 더러는 휠체어를 탄 채 밖으로 나와 방문객들과 함께 커피도 마신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쉽게 비관할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창졸간에 닥친 엄청난 불행 앞에서 그처럼 천연덕스럽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앞으로 재활치료에 전념할 예정이라는데, 기적처럼 감각이 되살아나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도한다. 그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니 분명 두 발로 걸어서 병원을 나오리라 믿는다.
오후에는 누나가 닭을 사와 백숙을 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닭을 사러 마트에 갈 생각이었는데, 텔레파시가 통한 모양이다. 늦은 점심과 늦은 저녁을 모두 백숙으로 해결했다. 하품을 하면 "꼬꼬댁!" 하고 닭울음소리가 날 것만 같다. 엄마가 계실 때 자주 해주시던 닭백숙, 다리를 들고 뜯으며 엄마 생각을 했다. 오늘로 엄마와 헤어진 지 꼭 100일이 되었다. 그 백일 동안 나는 잘 견뎌왔다. 엄마는 하늘에서 내 모습을 보시며 환하게 웃고 계실 것이다. "엄마, 내가 너무 천연덕스럽게 잘 지내느라 가끔 엄마를 잊을 때가 있을지도 몰라요.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고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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