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흐르는 날들② : 조언의 기술 본문
어제 갈매기에서 시 쓰는 후배를 만났을 때 나는 그의 안부를 걱정하는 듯했지만 사실 약간의 질책이 섞여 있었다. 서울에 사는 후배는 술 한 잔만 들어가면 습관적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인천으로 내려와 지인들과 모자란 술을 마시곤 하는데, 그 술자리를 상대하는 또 다른 후배가 어느 날 나에게 피곤한 내색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그건 매우 나쁜 버릇이에요.”라고까지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외로운 모양이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으나 야밤에 택시를 타고 내려와 인천 지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나도 여러 차례 직접 목격한 이후로는 은근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택시비나 모텔비도 만만찮을 뿐만 아니라 밤새 술을 마시니 건강도 나빠질 게 뻔한 일이다. 생활의 리듬도 깨지고 무엇보다 그의 술자리를 상대해 줘야 하는 다른 사람들의 부담감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고장난명(孤掌難鳴), 인천의 후배들 역시 하나같이 술을 좋아하니 내려오는 그 후배만 탓할 일은 아니다. 명시적으로 피로도를 드러냈으면 눈치 빠른 서울 후배가 모를 리가 없다. 실제로 외로웠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현재 무상으로 거주하는 지인의 작업 공간이 추운 겨울을 버티기에는 무리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수도와 보일러가 얼어 난방이 안 되고 취사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기 때문에 인천의 단골 모텔을 찾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질책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내가 어제 노골적인 우려를 표명한 이유는 그의 시를 아끼고 그의 건강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어제 나는 “택시비와 술값, 모텔비 등을 아껴서 그럭저럭 괜찮은 방을 얻어보도록 해라.”라고 말했는데, 사실 서울에서 ‘괜찮은 방’을 얻으려면 인천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조언은 사실 진정성 있는 조언이기보다는 지나치게 형식적인 조언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후배는 내가 “너는 참 철이 없구나. 왜 미래가 없는 듯 살아가고 있는 거니?”라고 하는 말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대안을 말해주지 못하는 조언은 잔소리거나 오지랖일 수밖에 없다. 내가 후배를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의례적인 조언을 툭 던지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을 게 아니라 상대가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함께 제시해줘야 한다. 어제 나의 조언은 그렇지 못해서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인간관계는 참 어렵다. 상대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섬세한 배려와 기술이 필요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누나가 빵과 돼지고기를 사 왔다. 거리두기는 이번에도 완화되지 않았다. 더구나 명절에도 함께 거주하던 친인척이 아니라면 5인 이상 모이면 단속대상이라고 한다. 명절에조차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안부를 나누기는 어려울 것 같다. 동생 가족만 이미 4명인데, 나와 아들이 동생네 집에 가면 신고 대상이라니, 참으로 모진 현실이다. 하지만 나와 수현이는 갈 생각이다. 엄마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명절인데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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