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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다시 또 겨울비 본문

일상

다시 또 겨울비

달빛사랑 2021. 1. 26. 01:55

 

어제 과음한 탓에 느지막이 일어났다. 썰렁한 집에서 아침을 맞을 때마다 엄마의 부재가 절실하게 와닿는다. 올 초만 해도 느지막이 일어나 거실로 나가면 텔레비전을 보거나 성경을 보고 있다가 안경 너머로 “얼른 아침 챙겨 먹어라.” 말씀하시던 엄마 때문에 집안이 환했었는데 이제는 방문을 열고 나오면 마음을 할퀴는 빈집의 적요만이 나를 맞는다. 한동안 나는 이 무거운 적요와 편치 않은 동거를 해야만 할 것이다. 피하지 않을 생각이다. 정서적으로 까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쓸쓸함과 적요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충분히 아파할 생각이다. 엄마가 나를 위해 마지막까지 배려했을 그 애틋한 마음을 기억하면서 많이 아파하며 조금씩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그것이 엄마를 잃은 자식의 도리고 예의다. 어떻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평온할 수 있겠는가.

 

주방으로 가서 테라스 쪽 문을 열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금방 그칠 비도 아닐성싶었다. 하늘이 내 눈높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담배를 피워 물며 이번 일요일쯤에는 가족 묘역을 찾아 엄마와 아버지를 만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석과 비석 위에 쌓인 먼지는 요 며칠 내린 비로 깨끗하게 씻겨 내려갔을 것이다. 빈 화병에도 화사한 꽃을 꽂아 드려야지. 엄마와 아버지가 화사한 봄볕 아래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산책할 수 있도록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올봄에는 뭔가 많은 일이 나를 찾아오고 또 나로부터 좋은 일이 많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설레는 예감이다. 설사 예감과는 달리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봄을 맞게 된다 해도 상관없다. 어쨌든 지금의 이 설렘이 현재를 행복하게 해주니 말이다.

 

 

디즈니와 픽사가 합병한 후 만든 또 하나의 애니메이션 ‘소울(soul)’을 감상했다. 늘 가족과 인간관계,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과 같은 철학적 문제를 독특한 시선으로 따뜻하게 형상화해 온 픽사의 감수성은 볼 때마다 나를 감동하게 한다. 익숙한 주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매번 그것을 독특한 소재를 통해 기발하게 형상화해 내기 때문에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전혀 진부하지 않다. 관객과 평론가 모두가 하나같이 9.0이 넘는 평점을 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 감상했던 ‘코코’가 죽은 자들의 세상을 다룬 영화였다면 ‘소울’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의 영혼들을 다룬다. 픽사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이 작품 외에도 두 편의 영화를 더 봤지만, 그것들은 킬링타임용 오락영화였다. 아, 물론 ‘불량공주 모모코’는 오락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또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문제적 영화다. 오래전에 봤지만, 다시 보았다. 신세대 감수성을 가장 일본적으로 풀어낸 영화다. 다시 봐도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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