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첫 출근 본문
시국이 어수선합니다만, 오늘부터 인천광역시 교육청(교육감 도성훈) 문화예술교육 정책 특보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예순이 다 돼서 늦깎이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된 것이지요. 당연히 부족한 게 많습니다. 학생들의 건강한 미래와 인천문화예술을 고민하시고 사랑하시는 많은 분들의 경륜과 고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저 역시 모든 비판적 제언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지역 문화예술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맡겨진 임무를 아름답게 수행하는 성실한 특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이른 8시 30에 교육청에 도착했다. 첫날이라서 처리해야 할 게 무척 많았다. 일단 출퇴근 시간 확인을 위한 지문 등록을 해야 했고, 교육청 내부 통신망 가입을 위해 다양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부서 간 업무 협조부터 시작해서 결재, 근무 상황 보고, 동선 관리까지 모든 게 그 통신망(ice talk)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편리하긴 하지만 약간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뭔가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다는 뭐 그런……. 오전 내내 교육감 비서실에서 와서 비품과 전화 연결, 내부 통신망 가입과 작동 여부 등등 이것저것을 확인한 후, 더 필요한 게 없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추가 모니터 한 대와 멀티탭, 책 받침대, 쓰레기통, 필기도구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총무과에 확인한 후 금방 가져다주겠다며 비서(주무관)가 환하게 웃고 나간 지 30분 만에 그 모든 비품이 나에게 전달됐다. 꽤 괜찮은 시스템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 부교육감을 비롯해 국장들에게 인사를 다녔다.
오후에는 교육감이 호출해서 보좌관실 바로 앞에 있는 교육감 집무실로 들어갔더니 교육감은 누군가와 대화하는 중이었다. 요즘에는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 아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칠 때가 종종 있다. 오늘은 다행히 상대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아이고, 문 이사님. 오랜만이네요.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 더 반갑군요.” 하면서 악수를 청해 왔다. 상대는 바로 인천예총 전임 회장이자 수채화가 김재열 씨였다. 그가 나를 ‘문 이사’라고 부른 이유는 내가 민예총과 문화재단에서 일할 때의 직책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을 보는 순간 교육감이 나를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심전심! 김 회장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게 특보로서의 내 첫 번째 임무가 되었다. 문화특보의 일이란 게 사람을 만나러 다니거나 정책을 연구하거나 혹은 오늘처럼 교육감이 문화예술인과 만날 때 배석해서 조언하거나 방문한 해당 예술인을 상대하는 일이다. 오늘 나는 그 일을 깔끔하게 해낸 것이다. 대화를 마치고 현관까지 배웅했더니 김 회장은 무척 흡족해했다.
6시 30분쯤 퇴근을 한 후, 코로나 때문에 울상인 단골집 갈매기에 들렀다. 근데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다. 내가 도착하고 30여 분이 지나자 혁재도 나타났다. 하지만 강력한 거리 두기 행정명령 때문에 갈매기는 9시쯤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9시에 혁재와 갈매기를 나와 예술회관 야외무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이미 도착해서 술 마시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혁재는 아마도 그곳에 앉아 술을 더 마실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나는 피곤하기도 하고 내일 아침 일찍 출근도 해야 해서 일찍 귀가했다. 피곤하긴 하지만 내일이 살짝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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