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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아버지 21주기 기일 본문

일상

아버지 21주기 기일

달빛사랑 2020. 8. 8. 22:38

 

 

아버지 21주기 추도예배를 봤다. 당직이라서 참석하지 못한 손자 수현이를 제외하고 모든 가족이 모였다. 오늘은 깜빡하고 미처 꽃을 준비하지 못했다. 생전에 꽃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영정 사진 속에서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아버지 장례식 때 나는 늙고 초라해진 아버지의 모습 대신 50대 때 찍은 사진을 찾아 영정을 만들었다. 매년 추도예배를 볼 때마다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배를 마치고 삼계탕을 나눠 먹은 후, 저녁 일정이 있는 자형 부부와 작은 누나는 먼저 가고 나와 엄마, 동생과 조카들은 아버지 산소를 찾아갔다. 엄마는 묘지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 “이제 힘이 없어서 자주 찾아오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도 이제 곧 당신에게 갈 테니, 그때까지 그곳에서 효자 아들들과 착한 손자들이 건강하게 잘 살도록 기도해주길 바랍니다.” 옆에서 엄마의 기도 소리를 듣다가 눈물이 날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나는 죽으면 번거롭게 매장하지 말고 화장해서 납골해라.”라는 말씀도 하셨다. 화장을 꺼리는 기독교인답지 않은 말씀이라서 조금 놀라웠다. 엄마는 누구보다 독실한 크리스천이고 성서에 나오는 휴거를 믿고 있는 분이셨다. 자식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으려는 속 깊은 마음의 발로였을 것이다. 부모는 그런 존재다. 이런 마음의 결을 만날 때마다 아득해진다.


늦은 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마 전에 차를 산 모양이었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수입 규모와는 무관하게 차를 구매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안전운행을 할 것과 음주운전을 절대 하면 안 된다는 말만 여러 번 강조했다. 법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범법자가 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아들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테지만 부모의 노파심으로 잔소리를 늘어놨다. 다른 때 같으면 “알아요.”하고 중간에 이야기를 끊었을 텐데, 오늘은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순순히 듣고 있었다. 큰조카 우현이는 카이스트 학부 과정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고 작은 조카 우진이는 올해 4년 장학생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수현이는 대학 재학 중에 그 어렵다는 법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으니 모두 제 앞가림은 충분히 한 셈이다. 부모 속 썩이지 않고 착실하게 성장해 줬으니, 요즘처럼 패륜과 패덕(悖德)의 시대에 부모 쪽에서 오히려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향한 부모의 잔소리는 마르지 않는 샘물 같으니, 그게 부모의 마음이라는 걸 요즘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사실 잔소리로 달라질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마음, 염려와 배려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결국에는 사랑이라고 믿게 되는, 잔소리.


오늘도 많은 비가 내렸다.

걱정이다. 이제 맑은 하늘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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