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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다시 새벽을 마주하며ㅣ세월호 배지를 떼어 내다 본문

일상

다시 새벽을 마주하며ㅣ세월호 배지를 떼어 내다

달빛사랑 2020. 7. 6. 17:12

 

여성 기독교인들이 기도와 헌신으로 일궈온 50년의 역사를 살펴보다가 다시 또 새벽을 맞는다. 그리고 문득 생각해 본다. 짐승처럼 대접받고 노비처럼 일만 하던 필부의 아내들은 어떤 맘으로 이 새벽을 마주했을까. 억압을 억압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중노동의 업보를 운명이라 여기며 하루하루를 견디던 그녀들에게 미명이 주는 고즈넉함과 새들이 노래하는 아침의 활기란 얼마나 천연덕스러운 상심의 계기였을 것인가. 자신의 피와 땀과 살과 뼈를 오로지 집안과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흘리고 발라온 한평생을 그 어떤 노래로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새벽과 아침은 공평한 시간이 결코 아니다. 새벽과 아침이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이 되기까지는 많은 죽음과 쟁투, 기다림과 좌절, 야속함과 분노가 새벽의 그 얌전한 의장과 아침의 활기찬 위세에 가려진 채 자주 스러지고 때론 끓어올랐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은 만인의 시간이 되지 못한 '어떤 아침'이 새벽의 옷자락을 붙잡고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머리카락 보인다.[오전 5시 현재]


서너 달 전 '다비치안경'에서 다초점 렌즈를 새롭게 맞췄는데 안경테 문제인지 도수를 잘못 측정한 것인지 쓰고 다니기가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3년 전에 맞췄던 기존 안경을 다시 쓰고 다녔는데, 그것을 얼마 전 김 모 선배와 술 마시고 돌아오던 날 택시 안에 두고 내렸다. 집앞에도 '다비치안경', '남대문안경' 등 유명 안경점이 있긴 했지만 두 군데 모두에서 '실패'를 맞봤기 때문에 구월동 이토타워 내(內) '타워안경원'에 가서 다시 안경을 맞췄다. 검사 결과, 3년 전 측정 기록과 별차이가 없었다. 다만 돋보기 부분만 한 단계 높였다. 가격은 다비치와 남대문에 비해 훨씬 저렴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준 나의 '의리'를 배려한 측면도 있겠지만, 앞선 두 안경점의 가격에 거품이 많았다는 말일 것이다. 17만 원을 이음카드로 결제했다. 


근처 갈매기에 들렀더니 손님이 한 테이블밖에 있었다. 전세 낸 기분으로 막걸리를 마셨다. 손님이 없으니 실내가 조용해 배미향의 '저녁 스케치' 음악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후배 정웅이가 지나가는 길에 들러 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 돌아갔다. 그후에도 내내 혼자였다. 8시 반쯤 혁재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 갈매기에 계세요?"

"응, 이제 가려고."

"잠깐 계세요. 들를게요."

"그래, 알았다."

 

20분쯤 지나서 혁재는 로미 씨와 함께 들어왔다. 둘 다 약간 취해 있었다. 로미 씨가 내 가방에 달려 있는 세월 배지를  부러워하는 것 같아 미련없이 빼서 그녀에게 주었다. 소녀처럼 감동했다. 혁재는 옆에서 "왜 형 걸 자꾸만 달라고 해."라며 지청구를 했다. 그녀는 감동의 가성비가 높은 편이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깜짝 기뻐하며 고마워한다. 

 

언제부턴가 세월호 리본이나 배지가 '난 의식 있는 사람이오.'라는 걸 드러내는 선민의식의 기제로 작동하는 걸 느꼈다.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누군가를 추모하는 방식으로 상징물을 만들고 조형물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마음을 담은 추모리본을 착장하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겠으나 어느 순간 그것이 추모가 아닌, (어떠한 의미에서건)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는 물건으로 변질된다면, 그때 그것은 단순한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되는 것이다. 난 나 자신에게서 그러한 혐의를 자주 발견했다. 세월호 배지가 추모나 반성, 다짐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의 의도적 구별을 위한 표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로미 씨가 나의 그 '노란 금속 배지'를 갖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꺼운 맘으로 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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