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바이올렛 에버가든 본문

바이올렛은 고아, 버려진 아이. 이름도 없었지만 자신을 거둬 준 로베르트가 제비꽃처럼 맑고 곱게 자라라고 붙여준 이름 바이올렛. 짐승처럼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글도 쓸 줄 모르던 바이올렛에게 인간으로서의 삶을 가르쳐 준 로베르트. 하여 로베르트는 바이올렛의 삶의 이유이자 전부였다. 당시 세상은 치열한 전쟁 중. 소령인 로베르트를 따라서 전쟁에 참전한 바이올렛은 살인무기가 되어 전선을 누빈다. 로베르트만 무사할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 마지막 전투에서 로베르트는 목숨을 잃고 자신은 두 팔을 잃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병상에서 깨어난 바이올렛은 로베르트의 전사 소식을 모른 채 그가 자신에게 마지막 순간 내뱉은 단어 “사랑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동수기인형이 되기로 한다. 의수를 찬 채 남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자동수기인형. 처음에는 편지조차 전장에서 매일 쓰던―로베르트가 바이올렛에게 글을 가르치기 위해 부여한 임무. 당시 ‘전쟁기계’였던 바이올렛은 명령과 임무라는 단어만 이해할 수 있었다.―보고서처럼 육하원칙에 입각한 무미건조한 편지를 씀으로써 고객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육성으로 듣고 그것을 문장으로 옮기면서 그녀의 백지 상태의 감정은 슬프고 아름답고 외롭고 찬란한 느낌들로 가득 차게 된다.
“고객님이 원하신다면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자동 수기 인형 서비스 바이올렛 에버가든입니다”
텔레비전 시리즈와 극장판 외전까지 모두 감상했다. 쿄애니(교토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몇 차례나 눈물을 질금거리면서 바이올렛의 남은 생이 찬란하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나도 누군가의 편지를 대필해주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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