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본문

매스컴을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라는 신조어를 만날 때마다 느낌이 묘하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좁혀야 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오히려 의도적으로 벌려야 한다니 얼마나 희한하면서도 서글픈 역설이란 말인가. 물론 이 거리두기 캠페인의 배경에는 사회와 구성원들의 안전이라는 절박한 요구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진 않지만,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내내 끼리끼리 어울리고 이종(異種)의 사람들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둬온 게 현대인들의 속성 아니었던가. 재산이나 지위 면에서 남다른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며 선민의 위상을 공고히 해왔고, 지역이나 종교, 정치적 지향이 다른 이들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서로를 배타적으로 대해 왔던 게 새삼스런 일이 아닐 텐데……. 하긴 신뢰와 존경을 전제로 하지 않은 결속은 눈앞의 시련을 만났을 때 습자지처럼 얇고도 가벼운 관계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법이긴 하지만.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형성되는 끈끈한 심리적 결속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들만이 보일 수 있는 관계의 모습이다. 또한 이해관계로 얽히지 않은 관계만이 시련을 만났을 때 진정성 있는 연대를 형성할 수 있다.
아무튼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 삭막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축적의 근원인 노동자와 민중의 부산한 활동조차 유예시키며 이렇듯 그럴 듯한 말로 자발적 유폐를 종용하는 것인지. 지금 우리가 ‘짐승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건 확실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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