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인천작가회의 제5회 작가와의 대화 본문

일상

인천작가회의 제5회 작가와의 대화

달빛사랑 2019. 9. 21. 23:40





작가회의에서 주곤하는 '작가와의 대화'에는 오랜만에 참석을 했다. 50대 소설가 세 명이 최근 작품집을 발간했다. 두 명은 소설집 한 명은 산문집. 책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면서도 힘든 일인가를 알기 때문에 해당 저서들의 문학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뜨겁게 응원해주고 싶다. 평가는 독자와 비평가의 몫일 것이다. 나 또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냉정하게 읽을 준비가 되어 있긴 하지만…….

 

세 사람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모두가 노동이라는 문제를 일관되게 다뤘다는 것인데, 최경주 작가의 경우는 80~90년대의 정통 리얼리즘 소설의 계보를 잇고 있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좀 다른 각도로 노동 문제에 대한 변주를 시도해 왔다. 그것은 아마도 각각이 처한 존재조건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경주 작가의 경우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왔고 현재도 닥트노동자로서 쟁의 현장에서 투쟁 중이다. 또한 등단도 전태일 문학상을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작가의 이러한 태생적 정체성이 현재까지 그의 작품을 규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독자들에게 좀처럼 읽히지 않는 노동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결코 버릴 용의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한 상황에 대한 응전에 게으른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전자라고 확신한다. 사실 현장 노동자가 생계를 위해 힘든 노동을 하면서 동시에 일정한 시간을 투자해야만 가능한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 조건을 가진 그에게 변화된 상황에 맞는 새로운 소설 쓰기와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것은 난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의 소설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리얼리즘 소설의 날 것 그대로의 문장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 문장들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낯익음은 일단 진부함으로 느껴질 소지가 큰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진부함보다는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것은 그가 구사한 문장의 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먼저 그 힘들고 모진 상황을 벗어난 사람의 부채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 후기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교묘한 공격에 대해 포섭된 셈이니까. 물론 자발적으로 투항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내가 지녀왔던 신념의 시대적 정합성을 의심하는 행위가 깊은 철학적 사색이나 구체적 실천을 통해 검증된 것이라기보다는 당면한 현실의 곤혹스러움 때문이었다는 건 분명하니까.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소설은 평자들로부터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할 게 뻔하고 평자들의 평가에 자신의 독서 취향을 많이 빚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그리 많이 읽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그의 소설이 너무 아프고 낡은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유행에도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낡은 감수성에 눈물이 났다. 내가 그들, 혹은 그것들로부터 너무 멀리 도망쳐왔다는 자괴와 미안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노동과 신념으로, 그 노동과 신념이 버무려진 소설을 무기로 그곳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올곧음이 안쓰럽고 그의 한결같음이 안타까우며 그의 무모함이 부럽기 때문에 미쁘면서 슬프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일찍 일어난 것도 그에 대한 연민과 마음 한편의 죄책감이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희석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고민과 전망, 좌절과 기쁨에 대해 공감해주는 것이 앞서 그곳을 떠나온 자의 예의라고도 생각했다.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사선을 넘나들며 노동의 현장에서 분주하다. 수십 년 동안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그는 여전히 그곳에 있고 나는 이곳으로 도망 중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화포럼과 이사 간담회  (0) 2019.09.24
가계부를 쓰다가  (0) 2019.09.23
드디어 우리의 여름은 갔다  (0) 2019.09.20
회고록 초고를 의뢰인에게 넘기다  (0) 2019.09.19
인천문화예술아카데미 이슈포럼  (0) 2019.09.1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