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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즐거웠던 송도 미팅 본문

일상

즐거웠던 송도 미팅

달빛사랑 2019. 5. 30. 23:30



옛 송도유원지의 초입이자 이름도 예쁜(혹자는 기생의 이름 같다는 말도 있지만) 옥련동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였습니다. 어린 시절 인천 외곽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송도유원지는 큰맘을 먹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지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놀이시설이 있었고 작은 배를 띄울 수 있는 호수가 있었으며 해수욕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은 연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데이트 장소이자 학생들의 단골 소풍지였습니다.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에게 그곳은 통과의례처럼 들러야 하는 공간이었지요. 변변한 수영복을 갖추지 못한 채 그곳을 찾은 얼굴이 까만 변두리 소년들에게 해수욕장의 컬러풀한 파라솔과 즐비한 텐트들은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60여 년 가까이 인천에서 살아온 나도 송도유원지를 가본 건 열 번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게다가 입장료를 받는 유료 공원이었거든요. 송도유원지는 인천의 대표 유원지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송도 역시 세월과 개발의 거센 광풍을 피하지는 못했지요. 현재는 공원과 놀이시설은 없어지고 주변에는 식당과 술집, 룸살롱과 단란주점, 모텔들만 즐비합니다. 그리고 아암도 인근의 갯벌을 매립해 새롭게 송도 신도시를 조성했는데, 그곳은 이름만 송도지 옛날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송도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인천 사람들에게 송도는 추억과 그리움의 공간입니다.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더욱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리움의 대상이 되거나 개인적 추억이 녹아들어 있는 공간을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대개 극적으로 그것을 윤색하게 됩니다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윤색은 화자나 청자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밉지 않은 윤색이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옥련동에 들렀습니다. 송도고등학교를 마주보며 좌회전해서 500미터쯤 가다가 다시 우회전해서 가는 길이 바로 송도유원지로 들어가는 길목입니다. 전원적인 풍경이 남아 있던 옥련동은 이제 아파트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옛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건물과 구 도로는 송도의 오래 전 모습을 떠오르게 만들어 줍니다. 물론 숨은그림찾기 하듯 꼼꼼하게 살펴봐야 발견할 수 있지요.

 

어제 인하대 김 모 교수를 비롯해서 무용가 박, 건축사 손, 후배 찬영 등이 그곳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김 교수가 자주 가는 정동진 회집의 음식은 무척 정갈했고 맛있더군요. 가격은 결코 싼 편은 아니었지만 모든 해물이 싱싱하고 깔린 스키다시들도 하나 같이 맛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소고기육사시미도 먹을 수 있었고 전복도 세 개나 먹었습니다. 아마 위가 놀랐을 거예요. 최근 이래도 되나싶을 정도로 잘 먹고 다니네요. 누가 계산을 하든 그 자리에서 만난 음식은 맛깔나게 먹어줘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형편이 안 되어 통 크게 술값을 낼 수는 없지만 계산해준 사람이 감동할 정도로 맛있게 먹어줄 수는 있지요. 아주 복스럽게, 아주 기분 좋게.

 

원래 이 자리는 가볍게 저녁 식사를 하며 그간의 안부나 나누자며 김 교수가 마련한 번개 모임이었습니다. 종강을 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재단 혁신과 관련한 소식을 공유하기 위한 이사들의 모임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먹방의 현장 같아 보이다가도 진지한 토론자리가 되기도 했고 또 때로는 생활 정보를 교환하는 소통의 자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격의 없이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고 가끔 누군가의 뒷담화도 하는 소소한 재미를 포기할 수 없나 봅니다. 사는 게 별 건가요. 사실 하루 종일 잠이 부족해 피곤하긴 했습니다만 격조했던 얼굴들도 볼 수 있었고 맛있는 음식들도 먹을 수 있어서 매우 행복했던 하루였습니다. 물론 이국의 강에서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공감능력부족자들처럼 우리는 너무나 유쾌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 다소 죄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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