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흔한 일요일, 새벽에 비 내리다 본문
자다가 허기가 느껴져 6시쯤 일어나 미역국에 이른 아침을 먹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주무시고 계셨다. 건강하실 때는 이미 일어나서 운동을 하거나 아침을 준비할 시간이었지만 요즘 어머니는 8시나 돼서야 거실로 나오셨다. 나는 두어 시간 더 잠을 자고 일어나서 어머니의 아침을 챙겨드렸다. 작음 음직임에도 어머니는 신음소리를 내셨다. 그 고통에 나는 의식적으로 무심한 척했다. “세 달은 걸린대요.”라거나 “어떡하나. 빨리 아물어야 할 텐데.”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뱉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어머니는 지금 도저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의례적인 말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증세가 악화되었을 때 마주할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고통에 왜 아무런 느낌이 없겠는가.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하는 마음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이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늙는다는 것이 외로운 이유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건강 상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도무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식들의 무심함을 견뎌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잖아도 모든 것이 버거운 노인들에게는 자신의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서의 갈무리까지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힘겨운 일일 것이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가끔 어머니를 외롭게 하고 있으니, 이 패륜을 어찌해야 할까나. 손수 만든 된장찌개와 계란 요리로 어머니의 저녁을 챙겨드린 건 참 잘한 일이란 생각이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한 상에서 식사를 하실 때 세상에서 가장 환한 표정을 짓곤 하신다.
두 편의 영화를 봤다.
그러나 오늘은 책 한 줄 읽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버석거리는 마른 나뭇잎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에 비가 내렸는지 문을 열고 마당을 보니 빗물이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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