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소박하지만 즐거운 추석이었어요 본문
아침 일찍 일어나 추모예배 자료를 만들어 웹상에 올려놓고 아우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일본여행에서 밤늦게 돌아온 누나는 여독이 풀리지 않은데다가 몸살 기운마저 있어서 올 추석에는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선학역 근처에서 현금을 인출한 후 동생네 아파트에 도착한 시간 9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현이와 어머니가 거실에서 나를 맞아주었습니다.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던 제수씨에게 봉투를 전해주고 아들과 조카들, 그리고 방금 일어난 아우가 세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촐한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제수씨의 친정어머니께서는 지금 병중에 계십니다. 폐암이 심각해 현재 사람 얼굴도 못 알아본다고 합니다. 얼마나 근심이 많을까요. 짐짓 명랑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 마음속은 무척이나 심란했을 게 분명합니다. 명절이라고 누구나 다 행복한 것만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더욱 나눔과 돌봄이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들은 못 보는 사이 더욱 의젓해져 있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휴학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평소에 아비로서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는데 저 스스로 앞길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는 아들이 대견했습니다. 제수씨가 바리바리 싸준 음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잠깐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외사촌 형님들이 오셨습니다. 어머니의 남동생이제 제 외삼촌의 아들들인 이 분들은 참으로 순박하고 성실한 충청도 공주 분들이십니다. 맨손으로 인천에 올라와 모든 신산을 다 겪어내며 아들 딸 시집장가 보내고 넘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는 안온한 삶을 살고 있는 착한 분들이시지요. 그분들에게는 아버지의 마지막 남은 혈육이 어머니인 셈입니다. 이제 그분들이나 나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밤새 이야기하며 고구마를 구워먹던 옛날의 추억은 여전히 선명합니다.
모두들 돌아가고 집에는 어머니와 나 그리고 수현이 이렇게 셋만 남았습니다. 피곤하실 텐데도 어머니는 손자의 곁을 맴돌며 뭔가를 해주고 싶으셔서 졸린 눈을 비비면서 견디셨지요. 그게 또 할머니로서의 기쁨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현이도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읽었던지 일부러 어리광도 피우고 이것저것 만들어달라 요구를 하곤 했는데, 내게는 그 모습이 너무도 대견하고 좋아보였습니다. 우리 가족들 모두가 어머니이자 할머니의 어진 성정을 닮아서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착한 마음으로 이날까지 살아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세상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던 가족들과 다시 헤어지게 되었을 때, 갑작스레 찾아오는 그 쓸쓸함을 울 어머니는 어떻게 견디실까 벌써부터 그게 걱정이 되긴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추석, 외롭고 쓸쓸한 생각한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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