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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그는 어쩌면 도움이 필요한 건지도 몰라 본문

일상

그는 어쩌면 도움이 필요한 건지도 몰라

달빛사랑 2016. 6. 24. 23:30

맨정신일 때는 말이 많을 뿐이지 심각한 민폐를 끼치는 법이 없는 후배가 술만 마시면 안하무인이 되곤 한다. 부잣집 맏아들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몇몇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최근에는 룸펜이 된 후배는 마음의 헛헛함을 술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세상 살면서 이렇다 할 고생 한 번 한 적 없이 늘 꽃길만 걸어온 부잣집 수재들의 예정된 일탈은 치열하게 살아가는 많은 동료들을 쓸쓸하게 만든다. 물론 그에게 기생하며(?) 술과 밥을 얻어 먹는 허다한 부류들이 그의 무위도식을 조장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은 새벽까지 몰려다니며 술을 마시고 느지막이 일어나 목욕을 하고는 다시 오후가 되면 술판을 벌이는, 조선시대로 따지면 한량의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한량들은 그나마 최소한의 풍류와 인문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이들은 스스로는 각종 문화행사와 세미나 혹은 인문학 강좌에 참석하긴 하지만 진정한 감상과 학습보다는 뒤풀이 자리에서의 음주에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문화건달들이라고나 할까. 나이 50이 다 되서도 자기의 생활을 스스로 건강하게 조직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친구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동류들끼리 몰려다니며 술을 마시는 거야 사실 간섭할 건덕지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들의 진지한 자리에 무례하게 합석하게 되면서 늘 사단이 나곤 한다. 그들이 합석한 자리에서는 이야기의 맥락이 뚝뚝 끊어져 버린다. 그러다가 자신의 몸과 정신을 갈무리 하기 힘든 지경의 음주 상태가 될 경우, 위 아래도 없이 욕설을 하며 분위기를 요상하게 만들어 버리곤 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선배들은 "똥이 무서워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의 심정으로 두고보다가 먼저 자리를 일어나거나 근력 좋은 후배들을 시켜 귀가조치 하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하곤 하지만 그것이 자꾸 반복되니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제 있었던 인문학 강좌 뒤풀이만 해도 그렇다. 예의 그 후배는 강의는 듣지 않고 뒤풀이에만 따라와 또 다시 피곤한 주사를 한바탕 벌인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를 좀 어려워 하는 친구라서 주의를 주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는데, "내가 문 선배 존경하는 거 아시죠?" 하며 갑자기 나를 잡고 우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를 존경하고 좋아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주정을 부리면 나는 너를 더 이상 후배로 대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하자 그제서야 다소 풀죽은 목소리로 "주의할게요."라고 사과를 하긴 했는데, 이런 류의 일들을 여러 번 겪은 선배들은 별로 그의 말을 신뢰하는 것 같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대한민국의 수재들이 간다는 서울대까지 나와서는 그는 왜 이리도 지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생각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후배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떠벌이고 다니지만 혹시 그는 무척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사람이 다 의지가 강한 것은 아닐 테니까, 자기의 삶이 구질구질 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질곡으로부터 쉽사리 벗어날 수 없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 때문에 이 친구는 그렇듯 취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뭐 그런 생각.... 어쨌든 결국 많은 사람들의 요구대로 먼저 귀가를 시키기는 했지만, (분명 그는 다른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실 게 분명하지만) 혹시 그는 떨어내야 할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앞으로 진지한 얘기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망가질 이유가 불분명한 한 사람이 망가진 모습을 보일 때, 분명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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