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권력의 실체 본문
우리는 흔히 권력을 양도하거나 교환할 수 있는 재화나 소유물로 생각한다. ‘기득권층이 개혁의 발목을 잡아서’라는 말은 권력의 소유 개념에서 나온 말이다. 마치 권력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줄 수 있는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면서 일단 어떤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강제로 그것을 빼앗지 않는 한, 영원히 그 사람의 소유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푸코는, 권력은 소유물이 아니라 전략이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대부분 권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모인 사회는 지배, 피지배의 이분법적 관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물코처럼 무수한 복수의 권력으로 뒤덮여 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서로 간에 미치는 힘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불균형을 이룬다. 그 비대칭의 불균형한 힘의 관계가 곧 ‘권력관계’인 것이다. 힘의 불균형이 있다면 친구 사이나 직장 동료 사이의 관계도 역시 ‘권력관계’이다. 권력은 소유라기보다는 행사되는 것이고, 점유가 아니라 사람들을 배치하고 조작하는 기술과 기능에 의해 효과가 발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은 ‘지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의 육체에 직접적인 강제를 가하는 왕조시대의 권력으로부터 사회 전체에 널리 퍼져 교묘하게 사람들을 감시하는 근대적 규율관계로 넘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지식 덕분이었다. 과거의 권력은 물리적 폭력에 가까웠다. 힘은 있을지언정 知的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권력은 이와 다르다. 무력으로 권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에 온갖 학자들을 불러 모은다.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하는 물리적 폭력은 상대방의 진정한 복종을 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권력과 관계있는 지식의 가치 판단 기준은 ‘진실’이다. 그런데 ‘진실’은 과연 진실일까? 한 사회의 지적 지배권을 장악한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결정하는 것이 바로 진실이 되는 게 아닐까? 개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하고 개인적인 축재를 한 것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추구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하는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면, 그 사회는 그것을 범법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할 것이다. 이렇듯 지식은 자율적인 지적 구조라기보다는 사회 통제 체계와 연결되어 있다. 한 사회에서 ‘진실’, ‘학문’, ‘지식’이란 결코 순수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권력과 욕망에 물들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상관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