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新시대-벗들과 술 헤는 밤"[작은극장 돌체] 본문
"辛시대-벗들과 술 헤는 밤"
작품에 등장하는 5명의 주인공들은 같은 대학의 성악과 동기들이다. 하지만 중년이 된 이들의 삶은 너무나도 달랐다. 물론 그 '다른 삶'이란 결국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아픔(辛)에서 비롯된 것인데, 홍일점 노시아(정회정)는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후, 대인 기피증에 시달리다 결국 이혼하고 자살을 기도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장덕수(원상운)는 성대결절로 인해 더 이상 성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추억의 포장마차 '신시대'를 개업하고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이태희는(오동훈)는 극중에서 유일하게 특별한 아픔이 없이 성악가로 성장한 캐릭터(명품과 고급 와인만을 선호하는이태리 유학파)인데, 학창시절부터 노시아를 짝사랑 해 온 인물이고 현재까지도 그 마음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 서도일(임재현)은 성악가의삶을 살긴 하지만 그리 성공하진 못한 인물이다. 늘 이태희에게 열등감을 느껴왔고, 현재까지도 둘은 티격태격하는 사이다. 박선웅(박웅선)은 성악가의 삶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생전 소망이었던 연극 배우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인물이다.
극은 장덕수가 성대결절로 노래할 수 없게 되자, 조리사 자격증을 딴 후, 선술집 '신시대'를 인수하고 대학 동창들을 초대한 상황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는 친구들에게 엽서를 띄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씩 주문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친구들이 도착했을 때 그 음식들을 하나하나 친구들 앞에 내놓는데, 친구들은 덕수가 만든 음식을 보며 그것에 얽힌 추억과 아픔을 회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상처와 아픔, 그리고 말할 수 없었던 마음의 일단들을 풀어놓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음악극에서는 음식이 모두를 힐링시키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시아는 아이와의 추억이 담긴 짜장면을, 그리고 태희는 군대시절 짝사랑하던 시아와의 추억이 담긴 문어다리를, 도일은 월남한 어머니의 치열했던 삶과 그것에 얽힌 자신의 아픈 추억을 환기하는 배추전을, 선웅은 아버지의 한이 서린 순대국을 각각 주문하게 되는데, 그 각각의 음식들은 주문한 해당 인물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인물들 각자가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이처럼 각자의 삶의 연혁이 달랐던 만큼 그들의 가슴속에 쌓인 상처 또한 각양각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음식을 매개로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고 위로받게 된다. 추억이 담긴 음식과 가슴을 울리는 노래는 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동력이자 치유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그렇게 그들에게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간다. 그러나 아마도 이 친구들은 다음 날 숙취에서 깰 때쯤 입가에 미소를 띄울 것이 분명하다. 그 미소는 친구와의 만찬을 통해 일정부분 아픔이 치유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또 각자의 삶 터로 돌아가 이제껏 살아왔던 삶을 살아가겠지. 물론 치유된 마음의 동력을 바탕으로... 그러나 몇 년 후 이들은 다른 상처를 안고 다시금 이 "신시대"라는 선술집에 모여 티격태격 하며 술잔을 나누고, 아픔이 담긴 노래를 하고, 스스로 안쓰러워 눈물짓다가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고 치유받는 과정을 다시 또 경험하게 될 지도 모른다. 계절이 반복되듯 그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구체적인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극단 '피어나'에서 주관하고 '동인천' 극단 후배들이 주체가 되어 만든 "신시대" 는 후배 준일이가 대본을 쓰고 상운이가 곡을 붙인 음악극이다.(사실 뮤지컬이라고 해도 무방해 보이긴 하지만...) 그리고 웅선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성악가들이다. 그래서 어쩌면 배우(?)들이 극 중 상황에 더욱 감정이입 되어 몰입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인천 극단이 무대에 올렸던 이전 두 차례의 공연이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왔던 터라 이번 공연은 대표 상운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신경을 써서 극을 올렸을 텐데, 내 생각에 이번 공연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판단된다. 일단 상운이가 작곡한 곡들이 무척이나 좋았다. 음반으로 출시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급이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성악만 했던 후배인 회정이나, 재현이, 동훈이 모두 연기가 기대 이상이었다. 극이 끝나고 서도일 역을 연기한 재현이에게 "재현아, 너 앞으로 계속 연기해도 되겠다. 오늘 공연은 '재현이의 재발견'이었어."라고 했더니 "제가 쫌 하죠."라고 특유의 귀여운 표정을 짓기도 했는데, 이번 공연의 연출자인 대선배 손민목 선생께서도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니 내가 잘못 본 게 아닌 것만은 확실한 듯 싶다. 출연자들 중 유일하게 웅선이만 연극배우였는데, 성우이기도 한 웅선이의 목소리는 극 중에서 무척이나 많은 매력을 발산했다. 에피소드 하나, 재밌는 것은, 뒤풀이 때 나온 얘긴데, 정작 공연 중 가장 실수가 많았던 것은 처음 연기를 시도했던 성악하는 후배들이 아니라 현역 배우인 웅선이였다고 하는 말을 듣고 모든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동인천 극단 대표 상운이가 이러저러한 악조건 속에서 고군분투 하는, 안타까운 모습만 보아왔던 나로서는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내고(일반인 관람객들 뿐만아니라 연극계 선후배들 모두 호평을 했다.) 모처럼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아마도 차기 작을 준비하는데, 무척 큰 동력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운 여름, 좋은 공연을 만드느라 애를 쓴 모든 후배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상운, 회정, 준일, 재현, 동훈, 웅선 모두들 애썼고 정말정말 사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