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4월은 잔인하지 않았네 본문

일상

4월은 잔인하지 않았네

달빛사랑 2012. 4. 30. 15:30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주었다.

T.S. Eliot, '황무지'

 

 그러나 나에게 4월은 결코 잔인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이 내 앞에 있었고, 게으른 자들에게 냉혹한, 공평한 시간이 내 주위에 있었을 뿐. 많은 사람들을 만나거나, 많은 과제들을 해결하면서 자주 비틀거렸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이렇듯 고사(枯死)하지 않고 살아 있잖은가? 생의 굴레란 어차피 낯익은 불청객, 부정하고 엄살 부려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조차 내 시간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가 계시고, 부쩍 몸과 마음이 야물어진 아들이 있고, 나를 위해 제몫으로 주어진 욕망의 일부를 기꺼이 포기하는 친구가 있고, 힘든 일상을 견디게 하는 문학과 일()이 있는데 무엇이 아쉬워 마음을 놓쳐버리겠는가. 얌전하고 순해진 바람 속에서 꽃은 피고지고, 갈증을 느끼는 대지 위로는 자애로운 빗물이 스며들던 4.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던 마음조차 부끄럽지 않은 4월의 시간들이, 자주 이곳을 찾았던 바람과 빗물에 날리고 떠간다. 다만, 나는 다시 이곳에서 새롭게 마주할 시간들을 기다리면 될 일. 아쉬움도 없고, 애증도 없다. 잘 가라. 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