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가을 숲길에서 바흐찐을 만나다... 본문
텍스트(Text)에 대한 심미적 고찰의 스킬 면에서 보면, 형식주의자(Formalist)들은 확실히 그 성과를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작품 자체의 유기적 통일성에 초점을 맞추고, 구체적인 분석의 기준들을 창조해 낸 그들의 작업은, 마르크시즘이나 역사주의적 비평가들이 간과한 미학적 측면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이자 신선한 도전이었다. 그들이 창안해 낸, '낯설게 하기', '전경화(前景化-언어를 비일상적으로 사용하여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하는 일. 상투적인 표현을 깨뜨림으로써 새로운 느낌이나 지각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으로 프라하 학파가 언어학과 시학에서 쓴 용어이다)', '소외' 등등의 개념들은 적어도 '가슴'에서 도출된 것들은 아니지만, 그들의 지적 세련미와 분석에의 집착들을 냉정하고도 날카롭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작품'을 찾았으되, '역사'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아름다운 화원에 피어난 꽃들의 유려한 모양새를 고찰하기에 바빴을 뿐, 그 나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은 다른 상황―기후적 혹은 지형적 요소들을 간과해 버린 것이다. 물론 그 꽃들과 나무들은 뿌리, 줄기, 잎의 자족적 유기적 통일성을 가진 생명체이다. 그러나 햇빛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나무가 자랄 수 있었겠으며, 빗물이 아니었다면 어디서 수분을 흡수했겠는가?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햇빛과 빗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나무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그것들은 부수적 위상을 가질 뿐, 해당 나무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는 오직 나무 자체만을 독립시켜서 연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작품을 분석함에 있어, 부수적인 것에 초점을 맞출 경우, '작품' 그 자체의 의미는 퇴색하고, 부수적인 것들만 부각될 수 있는 역사주의적 태도의 위험성을 극단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형식주의자들의 논리는 분명 나름대로의 타당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나는 그들이 쇄말주의의 유혹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위험성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작품도 엄연한 역사적 산물인데, 역사적 산물로서의 작품을 분석하는 데, 역사를 도외시 한다는 것은 자가 당착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바흐찐의 작업은 나에게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는 언어(문학의 표현수단이 언어 아닌가?)의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즉, 그는 문학 연구 혹은 작품 분석에 있어서 마르크시즘 및 역사주의와 형식주의를 설득력있게 통합한다. 물론 그것은 어설픈 절충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역사주의 및 마르크시즘 비평의 이념 편향과 텍스트의 심미적 측면에 대한 상대적 홀대를 지적함과 동시에,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반역사적 태도의 한계를 구체적 작품 분석과 꼼꼼한 논리로써 통쾌하게 비판하면서, 두 입장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해 내고 있는 것이다. 당분간 바흐찐과의 행복한 만남이 지속될 것 같다. 문학적 논쟁은 늘 재밌다. 그리고 타당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논쟁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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