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천사를 추억하다... 본문
오늘, 초저녁부터 나타난 상현달(반달)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 "혹.. 나는 천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야.
천상에서 뭔가 결정적 실수를 해서 지상으로 유배 온 천사란 말이지.
아, 물론, 내려올 땐, 당연히, 볼펜 모양의 '기억수정기'에서 나오는
섬광 플래시를 쐬었을 테니, 천상의 기억이 떠오를 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내가 홍은동 천사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나의 이력(履歷)이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하거든.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녀 앞 머리칼에 가려진 이마 밑으로
오뚝한 콧날이 인상적이었던 홍은동 천사,
신촌의 밤길을 함께 걸으며 나지막이 노래를 함께 부르다
나의 틀린 가사 부분을 바로잡아 주던 그녀...
지상에서의 삶에 익숙해지면서,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때 절은 운동화를 신고 있던 나였지만,
천사를 만나 무척 행복했었지. 꼭 요맘때, 그래..
추석을 앞 둔 가을밤... 그녀를 만났어.
천사인 그녀는 나의 이력을 볼 수 있었던 거야.
나 역시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가 천사였음을
똑같은 이유에서 알아볼 수 있었던 거구.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아름다웠던 홍은동 천사가
지상의 보잘것없는 남자를 선택했을 리가 없잖아.
맞다. 나는 분명 천사였던 게 틀림없어.
물증은 없지만, 물증보다 편리하고 매혹적인 심증이 있잖아.
달 밝고, 바람 소슬한 요맘때만 되면,
나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에 밤잠을 설쳐왔는데,
그 허다한 날들의 불면이 사실은 나의 출생의 비밀과 관련이 있었다니...
암 것도 모르는 인간의 머리로는 분명 나보고 미쳤다고 하겠지.
우하하하... 나, 조만간 유배가 끝나 천상으로 복귀할 때, 후회할 거야.^^
그나저나 그녀는 어디 있을까.. 그녀도 혹 저 달을 보고 있을까?
아니면 유배 기간의 단축을 위해 인간과 결혼해서 인간처럼 늙어가고 있을까?
천사에겐 그러한 삶이 얼마나 혹독한 형벌일 것인가? 문득 보고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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