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국화야.. 국화야.. 겨울 국화야.... 본문
아파트 화단에서 만난 목이 부러진 겨울 국화...
국화(菊花)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퓌였는다
아마도 오상고절(傲霜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이정보
[해설]
국화야 너는 어찌하여 따뜻한 봄철이 다 지나간 후에야
이렇게 잎이 지고 추운 계절에 너 홀로 피어 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매서운 서리를 이겨내는 꿋꿋하고 높은 절개)은 너 뿐인가 하노라.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를 지사(志士)의 절개에 비유하여 기린 노래로
작가가 말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소동파의 시구 "국잔유유오상지(菊殘猶有傲霜枝)"를 떠올리며 지었다고 한다.
그 시구는 '국화는 오히려 서리에 오만한 가지를 남겨 가진다'는 뜻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국화의 지조를 나타낸 시구이다.
꽃이란 따뜻한 봄철에 핀다는 일반적인 개념을 깨뜨리고,
추운 계절에 피어나는 '파격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는 국화이기에
아마도 이런 예찬을 받는 것이리라.
예부터 군자의 사랑을 많이 받아 온 사군자 중의 하나인
국화의 고절(高節)을 의인화하여, 작자의 삶에 대한 신념을
새롭게 다짐하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러나.....
표지판에 기대 힘겹게 몸을 가누는
병든 누이들의 손목처럼 가녀린 국화
그러나... 출근길, 아파트 화단에서 만난 가녀린 국화에서 나는,
꿋꿋한 지조와 오연(傲然)한 기개가 아닌, 계절의 풍파에 지친
처연함을 보았다. 내 눈이 이미 속물화되었기 때문인가?
혹독한 시련과 고통 속에서 고고한 자존심을 지킨다는 것은
어쩌면 겨울, 바람 속에서 피어난 저 국화의 '몸가눔' 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고고한 기개를 위해 동류(同類)들과의 어울림도, 벌, 나비들의 방문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국화의 삶... 그래... 그랬었지..
나도 저 '국화와 같은 삶'을 동경했던 적이 있었다.
고통조차 달콤한 아름다움이었고, 상처조차 영광스런 훈장이었던 시절...
나 스스로 느끼는 심리적 자족 혹은 도덕적 정당성과 무관하게...그때,
나도 저 국화처럼 ‘처연하게’ 보였을까?
저 국화는 계절을 앞서가는 전위인 것인가?
아니면, 계절에 뒤처진 가엾은 생명인 것인가?
나는... 무리짓지 못하고 각개로 피어나 힘겹게 몸을 가누고 있는
저 국화가 가엾다. 눈물겹도록 가엾다.
문득... 외롭다. 겨울은 길게 내 앞에 누워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들지 마..."- (에궁.. 요건 또 어떻게 살린담..ㅠㅠ) (0) | 2009.12.11 |
---|---|
신나게 웃어 볼까요?....^^ [펌] (0) | 2009.12.08 |
한계령... (0) | 2009.12.06 |
불가사의... 세련된 술주정을 위한.. 뭐 그런... (0) | 2009.12.05 |
이백, '장진주(將進酒)'... 술 잔을 내밀며..^^ (0) | 2009.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