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어느 여성 시인에 대한 단상 본문
오늘 저는 한 베스트셀러 여성 시인의 작품과 그 프로필을 우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일부러 검색해서 찾아본 것은 아니고,
그 분께서 제 블로그에 방문하셔서 답방차원으로 그분 블로그를 찾은 것이죠. 그분의 사생활을 위해 실명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그곳에서 정말 우연히 확인한 프로필을 통해서 그분이 시인이시고
참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계시며, 다양한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당 게시판에는 그분의 작품들이 시기별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더군요.
저도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큰 관심을 갖고 그분의 시를 하나하나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마디 제가 느낀 점을 솔직하게 몇 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적어놓고 나왔습니다. 물론 '건필하세요' 라는 인사도 빼먹지 않았죠.
그런데 나중에 저의 블로그에 들어와 보니 그 시인께서는 자신의 방문 흔적은 물론,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내 글마저 잔인하게도^^ 삭제하셨던군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 드린 말씀인데... 더구나 나는 글을 볼 수도, 올릴 수도 없도록 접근을 차단해 놓는 주도면밀함을 보이셨던데요...^^ 휴우~
나 사실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닌데...^^ 그리고 시인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진지한(비난이 아니라) 품평에 귀를 닫으면 고루해지는 법인데... 안타깝더라구요.
그래서. 이 차에 예의상 차마 해드리지 못하고 마음 속에 담았던 말씀을 별 죄책감없이(?) 속시원하게 펼쳐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의 시들은 대체로 '사랑, 이별, 실연, 그리움, 눈물'을 소재와 주제로 하고 있더군요.
사실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실연의 아픔과 그리움' 만큼 세대를 초월해서 모든 이들의 가슴을 격동시키고 감상에 빠지게 하는 주제도 없을 겁니다.
소재주의가 갖는 한계와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감정을 소재로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내면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냉정함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어야 가능한 작업일 것입니다.
왜냐 하면.... 너무 익숙한 정서일수록 그것이 상투적인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높기 때문이지요.
그 상투성에 빠질 때, 감정의 과잉이 초래되고, 결국 그 시는 여고생 연애편지 수준의 시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아... 여고생들의 그 가슴절절한 연애편지를 폄하하자는 게 아닙니다. 오해마시길!
그런데... 불행하게도(정말 나는 슬펐습니다.) 그 베스트셀러 여성 시인의 작품을 보고있노라니까,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저마다의 생명을 가지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나 거기에 사용된 시어들이 하나같이 모두 유사한 것들 아니겠습니까.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기다리겠다',
'눈물로 시간을 견디고 있다' 류의 시들...
약간의 변주만 이루어졌지 사실상 모두 동류항인 시들.... 사실 이것은 이 여성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에서 많이 팔리고 있다는 소위 '사랑시' 창작 작가군 대부분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얕은 감상, 철학의 부재, 감정의 과잉.. 오호 통재라!
뭐, 언어의 정제나 조어, 그리고 시적 긴장(tension)과 같은 시 형식적인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건 너무하다 싶더군요.
사랑... 참 아름다운 단어이자 살떨리는 주제입니다. 그 낯익은 정서를 소재와 주제로 했다고 해서 진부하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치열함을 느낄 수 없었다는 거지요. 아, 물론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겠죠.
'나는 치열한 고민 끝에 시를 쓴 거다. 그 치열함을 읽어내지 못하는 당신이 문제가 아닌가'라고.
물론 인정합니다. 저의 불민함은,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불민한 독자도 납득시켜야 하는 것이 훌륭한 시인의 임무가 아닌가요?
아무리 시인이 ,내밀한 정서를 아름다운 언어로 형상화해 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매일 이별하고, 매일 눈물 흘리고, 매일 가슴을 치며, 매일 떠난 애인을 기다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주제와 소재 면에서의 자기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 세상의 다양한 삶의 양상에 눈을 주지 못한 채 시를 쓰려고 하니...
진부한 자기 복제 내지 부분적 변주만을 일삼게 되는 거죠.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경험하는 생생한 현실과 혹은 치열한 자기 고뇌를 바탕으로 쓰여지는 게 아니라,
시집 출판을 위해 책상 앞에서 '만들어 지는(찍어내는)' 시들... 가슴아프지만... 이건 '배설'이지 예술로서의 '시'가 이미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작품들이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과 결합되어 베스트셀러로 둔갑한다는 것이죠. 참 씁쓸한 한국 시단과 출판계의 현주소입니다.
그래서 문득, 신경림이나 안도현, 기형도 시인, 그리고 후배지만 나희덕과 같은 시인들의 가치가 새롭게 느껴지더군요.
아.. 제 얘기는 나름 '등단'이라는 고답적 절차를 거쳐서 정식 시인이라는 명함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 드리는 말이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생활 속의 고뇌를 시의 형식으로 수줍게 그러나 진지하게 형상화하고 계신 이 땅의 모든 로맨티스트에게 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 땅의 어머니들과 힘겨운 아버지들은 이미 몸으로 시를 쓰고 계신 훌륭한 시인들 아니겠습니까.
하여... 정말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그 여성시인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삶이 치열하지 못하다면, 그래서 소재주의의 틀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퇴고(일명 글다듬기) 과정만이라도 좀 오래 가지셔서 불필요한 시어와 감상의 찌꺼기들을 걸러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단 본인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당신의 시를 정말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라도...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사랑시'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신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의 노래'를 소개하면서 제 답답한 소회를 마감할까 합니다.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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