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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치과 진료 ❙ 봄날은 가고 (4-4-목, 맑음) 본문

일상

치과 진료 ❙ 봄날은 가고 (4-4-목, 맑음)

달빛사랑 2024. 4. 4. 22:59

 

5.3 인천민주항쟁 관련 원고를 작성해 비서실에 보내고 쉬고 있을 때, 새로 온 마을교육사업 담당관의 부서의 팀장이 올라와 담당관을 위해 이것저것 살피고 챙겨주었는데, 그 모습이 한편으로 몹시 부러웠다. 그가 출근하면서 사무실의 주인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하긴 나는 일주일에 2~3번 출근하지만 그는 5일 출근하니, 그가 중심인 게 맞는 것도 같다. 

 

오전 근무만 하고 집에 와서 점심 먹고, 치과에 들렀다. 새로 만든 임플란트  치아 역시 착용했을 때, 발음이 자연스럽지 못했지만, 지난번보다는 훨씬 개선된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 준비할 때, 은준에게 연락이 왔다. 수봉산에서 시를 쓰다 내려오는 중이라면서 후배 시인 명수와 만나기로 했다면서 제물포로 오라고 했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거절했다가, 명수가 나를 꼭 보고 싶어 한다기에, 잠시 고민하다가 제물포로 이동해 명수, 은준, 나 셋이서 함께 저녁 먹었다. 세 사람 모두 회를 좋아해, 제물포역 앞에 있는 횟집('싱싱 종합어시장')에 들어가 강성돔과 멍게를 먹었다. 가성비도 좋고 맛도 좋았다. 특히 매운탕이 끝내준다. 이 횟집은 은준의 소개로 몇 차례 와봤는데, 올 때마다 만족했다. 다만 자리가 없어 번호표를 뽑고 대기해야 했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잇몸이 아파서 쫄깃한 강성돔은 아쉽게도 많이 먹지는 못했다.  

 

명수가 1차를 계산한 게 마음에 걸려 2차를 살 생각으로 근처 맥줏집에 들어갔는데, 그곳은 얼마전까지 내 친구 옥진이 운영하던 옛 '빙카'였다. 물론 사장은 바뀌었지만,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잠시 옛 생각에 젖었다. 집에 돌아오니 10시 40분, 셋 다 평소 주량에 비해 소량의 술을 마셔서 전혀 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횟집에서 소주 3병, 맥줏집에서 생맥주 5병, 각각 소주 1병씩 마시고 생맥주로 입가심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식사하면서 반주하듯 마시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산뜻한 술자리였다.  

 

아, 그리고 오늘, 은준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는 명수가 은준의 게으름을 진지하게 질타했다. 은준은 나름대로 변명했지만, 결과물로 말하라는 명수의 지적에는 아무 말도 못했다. 한 달에 5편 정도 시를 완성해서 가져오라고 했는데, 은준이 그걸 수행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달에 5편의 시를 쓰기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명수의 오더도 과도했지만, 최근 들어 한 편도 제출하지 못한 데에는 은준의 책임도 있는 게 사실이다. 입문 단계의 은준은 예민한 감수성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가슴을 격동시키는 일상의 감성들을 시로 형상화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전적으로 은준 자신의 발언이지만) 최근 은준은 시집을 열심히 읽고, 시 쓰기에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나와 손 시인이 너에게 시 가르치고 있다는 걸 주변 사람들이 다 아는데, 이따위로 하려면 그만둬. 내가 창피해" 명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지적을 했고, 은준은 겸연쩍은 표정을 하며 "나름대로 쓰고 있어"라는 말만 반복했다. 시인이 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면 세상에 절반은 시인일 거라고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내가 생각할 때, 지역 시인들을 많이 알고 있고, 문단에서 일어난 다양한 에피소드를 직접 본 것처럼 꿰고 있는 그이지만, 이처럼 문학적 성취가 더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시 자체보다도 시인이라는 직함과 그것으로 인한 대외적 이미지 제고에 훨씬 마음이 가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그는 순진한 감상주의자거나 유치한 딜레탕트일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명수도 그 점을 읽어냈는지 대놓고 지적해서 속으로 웃음이 막 나오려 했는데, 억지로 참았다. 나도 한때 그런 욕망을 지닌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은준이 온전히 진정성을 가지고 시 자체에 몰입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하는데, 걱정이 되는 건, 그와 대화하다 보면, 그는 현재 로또 당첨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시를 쓴다는 것. 사람들에게 뱉어 놓은 말(올해 안에 신춘문예에 당선하겠다는 말)이 있다 보니 조급해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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