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4월에도 나는 사랑하리 (4-1-월, 맑음) 본문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후 두 시쯤에 내리는 비나
늦은 귀갓길에 만나는 바람 앞에서도
나는 결코 당신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일제히 피는
붉고 노란 꽃들을 보면서도
나는 결코 당신을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알다시피 난 무척 용기 있는 사람이어서
아지랑이 봄 들판에 혼자 있어도
도대체 불안할 일이 무에 있을까요.
봄꽃이 당신의 목소리로 말 걸어와도
도대체 그리울 일이 무에 있을까요.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문계봉, '만우절'
오후에는 은준의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신포동에 들렀다.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는 월요일이 정기 휴일이라서 ‘가는 날이 장날’이 되었다. 할 수 없이 근처 ‘윤식당’(일본식 횟집)에 들어가 모둠회와 새우튀김을 주문했다. 가격은 싸지도 비싸지도 않았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횟집에는 자리가 없었다. 심지어는 문밖에서 대기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조금 번잡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다시 올 용의가 있는 술집이었다. 장의 말로는 윤식당이 신포동 횟집들과 포장마차 업계를 평정했다고 하는데, 그건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곳을 나와 동인천 쪽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다복집의 스지탕이 생각나 다시 신포시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장은 근처에 살고 있는 사진작가 임기성에게 연락해, 셋이 함께 보기로 했다. 임은 내 후배의 남편이기도 한데, 최근에는 동인천 역전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내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나이답지 않게 잘 깎은 밤처럼 깔끔했다. 다복집은 여전히 손님들로 붐볐다. 오랜 노포(老鋪)의 명성은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스지탕은 가격이 많이 올라 있었지만, 맛은 옛날 같지 않았다. 탕의 맛이 변한 건지,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신포동 문화 한량 오 모도 연락되어 합석했다. 오는 보자마자 “형, 얼굴이 많이 좋아졌네” 했다. 이런 종류의 인사치레는 언제 들어도 나쁘지 않았다.
돌아올 때는 가톨릭 회관 앞에서 15번 버스를 탔다. 장은 제물포에서 내렸다. 월요일인데도 만수역 근처 술집들은 무척 붐볐다. 담배 피우러 나온 젊은이들이 골목마다 북적였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 한 통을 샀다. 날이 포근한 게 전형적인 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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