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모든 경계에는 슬픔이 있다 (01-05-목, 맑음) 본문
함민복 시인의 시 중에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는 시가 있다. 나는 그 꽃의 자양(滋養)은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경계는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금이다. 이쪽과 저쪽이 같은 성격이라면 굳이 경계가 만들어질 이유는 없다. 성격이 다르고 쉽게 넘나들 수 없으므로 경계는 완강하다. 완강한 경계를 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데, 그 용기가 경계 저 너머로의 안전한 이주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경계 너머 다른 쪽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경계 안쪽의 삶이란 표면적으로 안온하다. 그 안온함은 순치된 자들의 자족이거나 모종의 힘에 의한 위장일 수 있다. 위장된 안온함의 본질을 깨닫고 경계를 넘으려는 모든 시도는 경계 안쪽을 지배하는 힘을 부정하는 것이고 또 다른 세계를 그리는 목마른 호기심이다. 그래서 월경(越境)을 위해서는 많은 걸 걸어야 한다. 많은 걸기 때문에 외로워지는 것이고 실패할 수 있으니 위험한 것이다. 하지만 실패의 위험과 외로움을 견디고 끝내 월경에 성공했다 해도 존재는 또 다른 경계를 만나게 된다. 넘을 수 없는 벽이 수도 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슬픈 일이다. 다만 하나의 경계를 넘어섰을 때 만나는 성취의 꽃은 그 향기가 너무 매혹적이라서 존재는 월경의 매혹을 포기하지 못한다. 한자리에 머물지 못하는 존재에게 경계는 꽃이 될 수도 있고 슬픔이 될 수도 있다. 계급의 경계, 계층의 경계, 성별의 경계, 빈부의 경계, 종교의 경계, 이념의 경계, 상상력의 경계, 세계관의 경계 등등 모든 경계에는 꽃이 피고, 그 꽃을 피우는 대개의 과정에서 슬픔은 필연이다. 혁명조차 실패하기 일쑤였고 경계를 넘으려다 죽어간 혁명가의 핏물 위에서는 숱한 꽃들이 피었다 졌다. 그 꽃들의 향기를 모아 향수를 만든다면 그 이름은 아마도 ‘마르지 않는 고귀한 눈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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