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아직 남아 있는 가을빛을 위하여 (11-13-日, 종일 흐림) 본문

새벽 4시쯤 잠이 깼다. 어젯밤 다소 이른 시간에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는데,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일찍 깼다고 특별히 뭔가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늘 그랬듯이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뭔가 하나에 생각을 집중하기 어렵게 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온갖 잡생각이 두서없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그러다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거나 텔레비전을 켠다. 딱히 할 일이 있거나 보고 싶은 게 있어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습관이다. 그렇게 스마트 TV를 켰다가 우연히 맘에 드는 영상을 발견하면 그 영상의 알고리즘이 안내하는 대로 종일 영화나 동영상을 시청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왠지 모르게 영혼이 황폐해진 느낌을 받곤 하는데, 쉽사리 고쳐지질 않는다. 물론 어떤 날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져 있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런 날은 정작 ‘늘어져’ 있지 않고 오히려 청소하고 빨래하고 반찬 만들고 하면서 부산하게 움직인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이다. 7시 30분까지 멍하니 있거나 유튜브를 시청했다. 창밖이 훤해지기 시작할 때까지. 왠지 모를 쓸쓸함이 온 방 안을 감싼다. 이런 날은 조심해야 한다. 대책 없이 외출을 하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취해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비 내린 다음날이었지만 생각보다 춥진 않았다. 가을 빛은 며칠 더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빗물에 의탁한 어제의 울음이 가을의 마지막 울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너무 방심하면 어느 날 문득 흰 눈 내리는 아침을 맞게 될 수도 있겠지. 생각해 보라. 눈을 앞세우고 겨울이 불쑥 인사도 없이 찾아들면 미처 이곳에 남은 마지막 빛들을 거둬들이지 못한 가을은 얼마나 당황스러울 것인가. 내 정원의 감나무, 그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기 전, 찾아온 겨울에 눈 인사를 보내고 의연한 모습으로 떠나는 가을의 뒷모습을 보고 싶지만, 아직은 아니다. 나 역시 가을을 보낼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가을이 건네준 진한 가을빛이 아직 남아 있다. 그 빛이 사라질 때 비로소 나의 가을은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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