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민주화운동센터 방문ㅣ갈매기에서 혁재 보다 (11-02-水, 맑음) 본문
11에 민주화운동센터에 들러 자문회의를 했다. 가는 길에 로드 킬을 당한 어린 고양이의 사체를 보았다. 눈을 뜬 채로 죽어 있었는데 맘이 좋지 않았다. 승용차 밑에서 쉬고 있다가 차가 출발하는 바람에 압사를 당했을 것이다. 언제 당한 사고인지 알 수 없지만, 지나쳐오며 누군가가 제발 저 어린 주검을 고이 치워주길 바랐다. 차도에서 죽은 고양이의 사체가 치워지지 않은 채 밟히고 또 밟혀 가죽만 납작하게 남아 있는 경우를 종종 보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오래전에 보았던 일본의 지방공무원들이 떠올랐다. 일본에서는 로드 킬이 발생하면 담당 공무원이 그 즉시 나와서 사체를 수거해갔다. 아예 그것만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는 것 같았다. 주검을 보기 싫어하는 인간의 감정을 배려한 것인지, 죽은 동물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버려진 주검을 보는 일은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주검을 오래 방치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예의와 품위가 있다는 생각이다.
회의를 마치고 센터 근처 중식당에서 위원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위원 중 한 분이 커피를 사겠다고 해서 센터 뒤편 교회 재단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들렀다. 그 교회 앞에서 고양이 사체를 본 건데, 혹시 다시 보게 될까 봐 은근히 걱정했는데 다행히 누군가 치워주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랑과 자비의 전당인 교회 앞에서 고양이의 사체가 오래 방치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교회 측에서 치운 걸까, 아니면 미화원이 치운 걸까. 누가 됐든 정말 고마운 일이다.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 이사장인 우재 형이 담배를 끊었다고 선언해 깜짝 놀랐다. 담배를 끊고 나서 식욕도 많이 늘고 혈색도 좋아졌다고 한다. 실제로 예전에는 식당에서 밥을 시키면 언제는 조금씩 남기곤 했는데, 오늘은 중국식 볶음밥을 한 그릇 다 먹고, 카페에서 주문한 호밀빵과 블루베리 음료수 큰 잔을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담배를 끊다니, 부러웠다. 나도 애인이 담배를 끊으라고 부탁하면 기꺼이 끊을 수 있을 텐데...... 아무튼!
청사로 돌아와 비서실에서 요청한 두 편의 글을 작성해 보내고, 다음 주 금요일 기호일보 금요논단에 게재할 칼럼 초고를 완성했다. 약간 피곤했다. 쓰고 싶은 글을 쓸 때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청탁받은 글을 쓸 때는 무척 피곤함을 느낀다. 오후에는 의자에 기대 잠깐 졸았다. 아니 존 정도가 아니라 깜빡 잠을 잤다. 무척 개운하고 편안한 잠이었다. 깨어 시계를 보았더니 내가 잠들었던 시간은 고작 20분이었다. 시간 감각의 상대성이란 참 묘하다. 꿈속에서 20분이면 한 나라를 건국하거나 저 멀리 우주여행을 다녀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가족행복의 날이라서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퇴근한다. 그래서 미리 텀블러와 커피잔을 씻어놓고 옥상에 올라가 퇴근 전 마지막 담배를 피웠다.
퇴근길, 서너 번 갈등하다 결국 갈매기에 들렀다. 6시쯤 도착했는데 내 자리에는 이미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맞은편 테이블에 혼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는 혁재를 보지 못했다면 그냥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혁재는 약간 풀린 눈으로 혼자 막걸리를 마시며 기타를 튕기고 있었다. 나를 보자 그 특유의 큰 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어쩐 일이에요?" 했다. 나는 "바람도 불고, 요즘 들른 지도 오래됐고.... "라고 말을 했지만, "사실은 네가 있나 해서."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기분 좋게 취한 눈빛이었다. 요즘 혁재는 나를 볼 때마다 '연애하라, 고백하라' 성화인데, 이 친구가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은 모양이다. 하도 진지하게 성화를 해대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래, 알았다. 노력해 보마.”라고 말하며 화제를 돌렸다.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게 아닌데, 왜 그걸 몰라주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오늘 무엇보다 반가웠던 소식은 혁재 모친께서 요양보호 등급을 받아 요양보호사가 매일 방문해 어머니를 보살피게 된 일이다. 하루 세 시간이지만, 말벗이 필요한 외로운 노인에게는 그 시간이 정신 건강에 매우 좋은 시간이 되어 준다. 그래 그런가 혁재도 그 소식을 전하며 환하게 웃었다. 매일 밖으로 돌며 술 마시는 혁재에게 더욱 좋은 음주 조건이 조성된 건 아닌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잠깐 했다.
오늘 갈매기는 빈자리 하나 없는 만원이었다. 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종우 형 내외가 노동운동 선배들을 모시고 저녁을 대접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날도 있네’ 하며 바라본 사장 종우 형의 표정이 동자승처럼 환했다. 걸음걸이도 무척이나 가벼웠다. 혁재와 술 마시기 시작한 지 한 시간쯤 지난 후 정웅이가 애인과 함께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후배들의 연애는 늘 보기 좋다. 벙거지를 눌러쓴 정웅이의 애인은 무척 야무져 보였다. 애인 앞에서 쩔쩔매는 덩치 큰 정웅이의 귀여웠다.
그럭저럭 막걸리 두 병을 마시고 일어났더니 혁재도 나를 따라 일어났다. 정웅이 커플의 술값과 먼저 와 있던 혁재의 술값, 내 술값을 모두 계산하고 나오니 정웅이가 따라 나오며 “형, 왜 계산해 주셨어요. 그럼 나 저 친구한테 혼나요.” 했다. 고맙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일 게다. “오늘만 내준 거 아니잖아.”하고 웃으며 “너는 네 후배들 술 사주면 돼.” 하고 말했더니, “네, 감사합니다. 형님. 그럼 살펴 들어가세요.” 인사하고 애인에게 돌아갔다. 혁재는 나에게 “형, 맥주 한잔 더 하실래요? 아니면 비틀스 가실래요? 거긴 제가 살게요”하며 2차를 가자고 제안했는데, 혁재와 좀 더 있고 싶었지만 피곤해서 거절했다. 술도 당기질 않았다. 혁재도 얼근하게 취한 것 같았다. 결국 혁재는 동인천에 모여 있는 선아와 산이 일행에게 가겠다고 해서 나와 함께 전철을 타기로 했다. 전철역까지 가는 길에 많이 웃었다. 그 길이 너무 짧아 아쉬웠다. 시청역에서 나는 운연 방면의 전철로, 혁재는 주안 방면의 전철로 환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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