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송월동, 후배의 불안한 거처를 다녀오다 본문
혁재에게 전화가 왔다. 명절 준비를 끝내고 얼마 전 송월동 동화마을로 이사한 친구, 은수네 집엘 간다고 했다. 혼자 사는 친구에게 전을 비롯한 음식을 바리바리 챙겨서 가는 모양이었다. 그곳을 다녀온 조구 형과 갈매기 형의 이야기도 들은 바 있어 궁금하긴 했다. 조구 형은 그 집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전경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전부터 한 번 들르라는 혁재의 말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한 번도 간 적이 없어 말 나온 김에 나도 가마고 했다.
인천역에 도착할 때쯤 혁재와 은수가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올 테니, 역 앞에 서 있으라고 했다. 3분쯤 기다리니 은수의 포터가 도착했다. 동화마을 끝자락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 마트에 들러 막걸리와 소주 서너 병을 샀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내가 사줄 테니 다 장바구니에 넣으라고 말을 했는데, 은수는 고작 2만 원어치 물건만 계산대에 올려놨다. 마음이 여린 친구라서 부담 주기 싫어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휴지와 과일 등을 집어와 함께 계산했다.
차로 5분쯤 올라가 도착한 그의 집은 거실과 테라스는 제법 넓었지만, 공사 자제들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그나마 주방과 기거할 방, 화장실은 사용할 수 있었다. 공사가 다 끝나면 그런대로 괜찮은 분위기의 공간이 될 듯싶었지만, 돈이 없어 중단한 이 공사가 언제 끝날지는 가늠하기 어려워 보였다. 순한 눈을 가진 진돗개 잡종 한 마리가 나를 맞았다. 혁재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고 그 앞 테이블에는 그의 전처 선아가 앉아 있었다.
혁재는 막걸리를 마시고 나와 은수는 혁재가 집에서 가지고 온 문배주를 마셨다. 선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해야 한다며 술을 사양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청하 한 병을 마시다 먼저 귀가했다. 저녁이 되면서 안쪽에서 술을 마시던 우리는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다. 조구 형이 말한 바로 그 테라스였는데, 그런대로 야경은 볼만했다. 10시쯤 되어 갑자기 취기가 몰려와 은수의 텐트에 들어가 한 시간쯤 잠을 잤다. 일어나니 11시, 은수가 콜택시를 불렀으나 배차되지 않아 혁재와 나는 인천역까지 걸어와 전철을 타려고 했는데, 막차가 이미 끊겨 정거장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10분쯤 기다리니 빈 택시가 연이어 두 대가 왔다. 극적으로 집에 올 수 있었다.
이미 한숨 자고 일어났기 때문에 취기는 사라졌다. 돌아오는 택시에서 내내 그 집과 후배들을 생각했다. 그야말로 야전 생활을 하는 듯한 은수를 도와줄 방법을 생각해 봤으나 딱히 떠오르질 않았다. 본인은 천진하게 웃고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일도 끊긴 요즘, 집수리는 고사하고 생활이 말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아들이 군에 있어, 은수 자신만 건사하면 될 일이긴 하지만, 안 그래도 섭생이 시원찮은 친구가 병이 날까 걱정되었다. 악조건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 (표면적인) 낙천성이 부럽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들 아니면 결코 시도하지 못할 다양한 일들이 재밌기는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떤 경계의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것 같아 내심 불안하다. 현실은 그들이 찾아든 마을 이름처럼 결코 동화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다녀오길 잘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시대 ‘라떼족’을 위한 단상들 (0) | 2021.09.22 |
---|---|
추석, 폭우로 시작해 폭우로 끝난..... (0) | 2021.09.21 |
휴식, 그리고 아들의 선물 (0) | 2021.09.19 |
9월 18일 토요일, 추석 연휴 시작 (0) | 2021.09.18 |
2차 백신(화이자) 접종 (0) | 2021.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