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9월 9일 목요일, 아들과 나의 생일이 겹쳤네 본문
오늘은 만 59세의 생일, 늘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나 손수 미역국을 끓였다.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먹는 풍습이 언제부터, 무슨 연유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 역시 그 풍습을 따르기로 했다. 케이크도 촛불도, 이렇다 할 요리도 없는 초라한 생일 아침 밥상이지만, 미역국만은 올라가 있어야 생일 느낌이 날 것 같아서다. 하늘에 계신 엄마도 다른 건 몰라도 미역국만은 먹길 바라셨을 것 같기도 하고…… 다만 작년까지는 엄마가 끓여주셨는데, 올해는 엄마 없이 혼자 국을 끓여 먹으려니 서러워서가 아니라 엄마가 그리워서 울컥했다. 전날 이미 미역을 물에 담궈 불려놓았다가, 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상에 올리며 "소고기가 많이 들어가야 맛이 날 텐데, 고기가 없어 그냥 끓였다. 맛 없어도 그냥 먹어라" 하시며 멋적어 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는 나도 엄마도 서로를 위해 국을 끓여줄 수가 없으니 그게 서럽다.
어제 술 마실 때, 옆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만 (술기운에) "내일이 내 생일입니다"라고 말을 했을 뿐,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았는데도, 아침부터 많은 지인들이 카카오톡으로 생일 축하 메시지들을 보내왔다. 더러는 홍삼이나 과일, 커피와 케이크 등의 선물까지 보내주었다. 아마도 카카오톡의 자동알림 기능을 통해 내 생일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그동안 내가 그리 엉망으로 살아오진 않은 모양이다. 고마운 일이다.
밤이 늦어서는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즘 법원 업무가 바빠서 조금 전에야 퇴근했다고 한다. 아들과 전화통화를 한 시간이나 했다. 사는 얘기, 가족 얘기, 앞으로 살아갈 얘기 등등 부자 간에 이렇게 오래 통화해 본 건 처음이다. 아이의 말투와 어조에서 이전보다 많이 순해진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성숙해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얘기 끝에 아들은 생일 선물로 '갤럭시워치4'를 사주겠다며, 원하는 모델과 판매자 링크를 보내달라고 했다. 40만 원 정도하는 스마트 시계인데, 혈압과 맥박, 체지방비율을 알려주는 기능이 있어 성인들에게는 쓸모가 많은 시계라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도 애플워치를 사용하고 있는데, 여간 신통방통한 게 아니라고도 했다. 소용이 많은 걸 왜 모르겠는가. 다만 아들이 땀 흘려 번 돈을 허투루 쓰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함 마음 때문에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아들은 월세와 용돈을 충당해 주는 안정적인 주식 계정이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야..... 기꺼운 마음으로 받기로 했다. 시계를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아들이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준다면, 천연덕스럽게 받아 챙길 작정이다. 많이 감동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다소 오버스럽게) 보여줄 생각이다. 그래야 아들도 뿌듯할 것이고 애비에게 선물을 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테니.... 생일에 느끼는 쓸쓸함 때문에 한때는 생일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물 흐르듯 오고가는 마음을 즐길 생각이다. 생일은 고마운 날이고 누군가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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