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의리로 그곳을 방문했다가 본문

일상

의리로 그곳을 방문했다가

달빛사랑 2021. 7. 28. 00:40

 

오후, 같은 방 보좌관이 백신을 맞기 위해 조퇴를 했다. 텅 빈 사무실에서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휴가철이기도 하고 재택근무자가 많아 7월 말 청사는 썰렁했다. 북향인 사무실이라서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도 냉기가 느껴졌다. 방문객들과 보고서를 들고 오는 직원들로 북적대던 보좌관실이 모처럼 한가했다. 요즘처럼 숨 가쁜 일상에서 만나는 꿀 같은 고즈넉함이었다. 한때 이런 여유로움이 부담스러웠다. ‘이건 내 몫이 아닐 거야’라는 불안함도 있었고, 슬쩍 간을 본 후 더 큰 부담을 안기려는 운명의 장난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워낙 다채로운 삶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고 나니 작은 마음의 평화나 갑작스레 만나는 한가로움이 도무지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다가오지 않은 일을 미리 당겨서 고민하고, 피할 수 있는 불행조차 담담하게 맞으려고 맘을 먹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했더니 오히려 맘이 편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있게 먹는다고, 이런 종류의 여유를 자주 겪어보지 못했으므로 갑자기 주어지는 평안함과 여유로움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다. 나 자신을 자주 위로해 주기로 했다. ‘너는 사랑과 위로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어’라거나 어깨를 두드리며 ‘맞아, 이건 네 몫의 평안이야. 넌 누릴 자격이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할 수 없다면, 내가 너무 가여워질 것 같아서다. 수요일 오후 예고 없이 나를 찾은 한가로움 속에서 나는 대견스러운 다짐을 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요즘 손님이 너무 없다는 푸념을 듣고는 ‘의리로’ 갈매기를 찾았다. 지난 금요일 이후 닷새 만이었다. 땀에 흠뻑 젖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기타를 연주하는 혁재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혁재는 근직이와 선약이 되어 있어서 오래 함께하지는 못했다. 거리두기 4단계에서는 3명이 함께 술 마실 수 없다. 때마침 인천집에 와 있던 수홍 형이 연락했다. 가방은 갈매기에 놓아둔 채로 인천집에서 수홍 형과 만났다. 혁재와는 막걸리를 마셨고, 수홍 형과는 소주와 맥주를 마셨다. 가뜩이나 빈속에 세 종류의 술을 섞어 마셨더니 속이 거북하고 취기도 일찍 찾아왔다. 9시쯤 가방을 찾으러 갈매기에 들렀을 때, 주방 앞 좌석에선 혁재와 근직이가 한결같았고, 출입문 쪽에선 조구 형이 혼자 앉아 술 마시고 계셨다. (누가 또 있었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만약 누군가 있었다면, 세만 형님일 텐데…… 화장실 앞에서 잠깐 본 것도 같고…… 근데 그게 오늘인지 지난주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취한 게 분명하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러나 형과도 이내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잠시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몸이 허락하질 않았다. “맨날 이렇게 지나가다 만나네요. 형”하며 악수만 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확진자는 2천 명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밤거리 풍경만 보면 코로나 이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수홍 형과는 어떻게 헤어진 거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