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술이 없는 월요일 본문
오전에 교육감 수요 편지를 작성해서 소통협력과에 넘겼고, 후배 윤 모가 교육청을 방문해 구내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제고 체육 교사인 친오빠가 최근 야구부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교내 상황에 깊숙이 관계된 모양이었다. 담당 보좌관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돈 문제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크게 걱정할 건 없다고 말해주었다. 선수 학부모들과 감독 사이의 문제는 무척 복잡하다. 선수의 생사여탈(生死與奪)을 책임지는 게 감독이다 보니 어떤 성향의 감독이 부임하느냐에 따라서 아이의 선수 생명이 좌우된다. 그러니 학부모들로서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의 감독에 호의적인 학부모들은 (다시 말해서 현 감독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선수의 학부모들은) 왜 잘하고 있는 감독을 교체하려고 하느냐며 들고 일어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선수의 학부모들은 더 유능한 (사실 이건 명분이고 속내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공평하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감독을 새롭게 영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진 학부모들 사이에서 고소 고발이 이루어졌다. 윤의 오빠는 야구부 담당 교사로서 이 문제에 얽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현 감독과 교장, 윤의 오빠 모두가 같은 D고교 출신이라서 교체를 주장하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동문 사이에 뭔가 오고 간 말이 있는 게 틀림없다며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교장의 무사안일함도 그렇고 윤의 오빠도 그렇고 제 자식의 안위만 걱정하는 학부모들도 그렇고 모두가 꼴사납게 생각되었다. 제고가 언제부터 이렇게 지역의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오후에는 다음 달 5월 3일 진행될 ‘제35주년 5.3인천민주항쟁계승대회’에 보낼 교육감 축사를 작성해서 대변인실에 넘겼다. 원래 이런 글은 동아시아 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가 작성해서 올려야 하는데, 글을 받아보니 너무 진부하고 특징이 없어 결국 내가 다시 작성해서 교육감에게 전달하고 대변인실에 보낸 것이다. 앞으로 축사나 행사의 인사말은 모두 내가 써야 할 것만 같은 불안한(?) 생각이 엄습했다. 이런 걸로 내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생계형 공무원이니 하라면 할 수밖에……. 하긴 그것이 영상으로 남아 길이길이 보전되니 한편으로 뿌듯하긴 하다만…….
연 2주째 술 없는 월요일을 보낸다. 몸이 가볍다. 일찍 집에 오니 마음도 여유롭다. 당분간 이 기분을 유지해야겠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4차 대유행의 조짐이 보인다고 하니 조심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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