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선별적 복지대상이 되었다 본문
구청으로부터 주거비지원 대상자로 선정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본래 내 몫을 적극적으로 ‘찾아 먹는’ 스타일도 아니고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절박하게 생활하고 있던 것도 아니라서 (지원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두어 달 전 구청직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서류를 넣어보라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60여 일 간의 심사를 마친 후 오늘 그 최종 결과를 통보해 준 것이다.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국가로부터 일정한 도움을 받게 되다니, 나이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집 없고 돈 없는 전업 시인을 국가가 차마 외면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이제껏 ‘국가가 내게 해 준 게 뭐가 있어’라는 다소 삐딱한 마음을 먹고 살아왔는데 알량하나마 ‘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이제 대놓고는 뭐라고 못하게 된 셈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이 없어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빚을 지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다행한 일이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나보다 재산이 많고 여유가 있어 보이는 친구들 중 상당수가 사실은 하나 같이 적잖은 빚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집이 두 채지만 하우스푸어로 살아가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나는 차도 없고 집도 없고 쟁여놓은 재산도 없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가끔은 고급스런 문화생활도 하는 편이며 또 대개는 후배들에게 술도 사주며 생활하고 있으니 오히려 내가 실속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업하는 친구에게 보증을 서 준 것이 잘못 돼 전 재산을 날리기 전, 그러니까 내가 어마무시하게 돈을 벌던 학원장 시절에 넓은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도 구입해 봤고, 고급술집에서 친구를 만나 호기 있게 술값도 내봤으며 필요한 모든 것은 맘만 먹으면 쉽게 사들일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왠지 모르게 늘 쫓기듯 빡빡하게 살았던 것 같다. 물론 들어올 돈이 있고, 상환 능력이 있어 이내 채워지긴 했지만 내 마이너스 통장은 채워지는 즉시 다시 빠져나가는, 그래서 거의 마이너스 상태가 줄곧 이어졌다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무척 희한한 일이다. 다만 그 당시에는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유치한 우월감이나 만족감을 얻는 것으로 그러한 ‘희한한’ 마이너스 현실을 보상받으려 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지금 나는 내 생활에 만족한다. 이 주관적 부유함과 심리적 만족 상태가 얼마나 더 지속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의 벗들도 많이 생겼고, 결코 만만찮은 시련 속에서 학습된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현실과의 대결에서 쉽게 패퇴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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