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부른자와 소환된 자, 부등가 교환은 없었다 본문
사람이 살면서 어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겠는가. 가끔은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마시고 싶지 않은 술을 마시는 일도 그 중의 하나다. 날은 덥고 길은 멀고 또한 컨디션이 영 아니다 싶은데도 누군가 먼 곳에서 호의를 가지고 나를 부를 때 거절하지 못한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배다리는 심리적으로 너무 먼 거리다. 날은 어제처럼 더웠다.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오늘 같은 염천에 굳이 마시고 싶지 않은 술을 마시러 남동구에서 동구 배다리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갔다. 배다리 간지도 오래되었고, 무엇보다 후배가 ‘일부러’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방의 마음이 진심이라 느껴지면 대체로 내 쪽에서 불편을 감수하는 편이다.
환승을 했더니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만수역에서 시민공원까지 지하철로 10여 분, 그리고 시민공원에서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15분, 기다리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30분 안팎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하지만 산술적 거리보다 늘 심리적 거리가 문제다. 사랑하는 애인이 부른다면야 대구 부산, 달나라는 못 가겠는가. 아무튼 터덜터덜 도착하니 효숙 선배와 승미가 와 있었다. 근처 전시회를 보고 지나는 길에 들른 모양이다. 내가 도착하고 30분 후에는 혁재가 왔다. 우리는 간만에 노래하고 연주하며 신나게 놀았다. 다들 쉰이 넘은 나이에 술이 들어가고 기타만 잡으면 옛날로 돌아가는 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잠재된 감정들이 무장해제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종류의 풀어짐과 약간은 신파 같은 감상이 싫지 않았다.
한 100여 분 간 그렇게 놀다가 효숙 누나, 승미와 더불어 일찍 일어나 돌아왔다. 우리가 일어설 때쯤 후배 S가 도착했다. 남은 후배들은 또 그들만의 색깔로 시간을 요리하며 놀았을 것이다.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한 사람의 외로움은 매번 모종의 모임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리고 그 모임 속에 계획 없이 소환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일부(一部)로 값을 치른다. 희한하게도 술과 노래가 있는 경우 부른 사람과 소환된 사람, 그들 사이에는 부등가 교환이 없다. 그거면 된 거다. 부른 이도 행복하고 소환된 자도 행복하면 된 거 아닌가. 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도 적당했고, 차도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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