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평범한 하루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본문
"타이웨이 교수의 글은 중국대륙의 역사와 문명, 시간과 공간을 여행자의 사유와 정서 안에서 현재형으로 살려내고 있었다. 그의 여정은 발해의 길림성 유적지에서부터 저녁 무렵의 만리장성 성벽, 지평선을 건너가는 봉수대, 여러 왕조와 부족들의 폐허를 지나 둔황을 거쳐서 실크로드의 서쪽 끝으로 전개되었다. 지나간 시간과 사라진 공간들이 거기에 몸을 적시는 자의 마음을 통과해 나오면서 글을 빚어내고 있었다. 폐허의 돌무더기 위에 빛이 내렸고 모든 시간과 공간이 현재의 빛을 받아 소생했는데, 그 빛의 발원지는 살아 있는 인간의 생명이었다.
그의 글에서는 역사와 문명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이 서로 연대하고 있었다. 모래산을 옮겨가는 사막의 바람과 바람에 쓸리는 억새와 산협을 휘도는 강물과 고원에 피는 들꽃들이 모두 문명이라고 이름 지워지는 지상의 삶 속에서 저마다 명징한 표정을 지니고 있어서 그의 글 속에서 문명과 자연은 배타적으로 구분되지 않았고, 그 두 개의 범주가 대척점에서 맞서 있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존재를 표준으로 내세워서 이 세계를 안과 밖, 이쪽과 저쪽으로 구분하지 않았고, 사물과 풍경에 함부로 구획을 설정하지 않았으며, 그의 언어는 개념을 내세워서 사물을 무리하게 장악하려 들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모든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과 친화할 수 있었고, 친화로써 비밀에 닿았고, 그 친화의 힘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통로를 열었고, 그 통로를 따라 글은 전개되었는데, 그가 찾아낸 비밀은 단순하고 또 명료해서 비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의 문체는 순했고, 정서의 골격을 이루는 사실의 바탕이 튼튼했고, 먼 곳을 바라보고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자의 시야에 의해 인도되고 있었다. 그의 사유는 의문을 과장해서 극한으로 밀고 나가지 않았고 서둘러 의문에 답하려는 조급함을 드러내기보다는 의문이 발생할 수 있는 근거의 정당성 여부를 살피고 있었다. 그의 글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려고 떼를 쓰지 않았으며 논리와 사실이 부딪칠 때 논리를 양보하는 자의 너그러움이 있었고, 미리 설정된 사유의 틀 안에 이 세상을 강제로 편입시키지 않았고, 그 틀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세상의 무질서를 잘라서 내버리지 않았으며, 가깝고 작은 것들 속에서 멀고 큰 것을 읽어내는 자의 투시력이 있었다. 그의 글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성찰에 가까웠고 증명이 아니라 수용이었으며, 아무 것도 결론지으려 하지 않으면서 긍정이나 부정, 그 너머를 향하고 있었는데, 그가 보여주는 모든 폐허 속의 빛은 현재의 빛이었다. 강을 건너고 산맥을 넘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그 초로의 여행자는 관찰자인 동시에 참여자였고 내부자인 동시에 외부자였으며, 인간이 겪은 시간 전체를 살아가는 생활인이었다."-김훈 장편소설 <공무도하>(문학동네) 25~26쪽에서
김훈이 소설 속에서 가상으로 만들어 낸 인물인 타이웨이 교수와 그가 저술한 <시간 너머로>를 평해 놓은 부분인데, 이 부분은 아마도 김훈 자신이 소설가로서 다다르고자 하는 작가적 지평과 소망을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려 서술해 놓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정말 위에 서술된 것처럼 글을 쓸 수 있다면..... 글쟁이들이의 로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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