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산책자의 평범한 하루
내 친구 김 기자의 고약스런 주사 본문
그는 경력 25년의 베테랑 기자다. 비록 중앙 일간지 기자출신은 아니지만 지역 언론계에서는 상당한 중견으로 인정받고 있다. 인재 풀이 그리 풍부하지 않은 지역 언론계에서 그가 관계하지 않은 인천의 종이신문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는 나이는 많지만 자기보다 입사가 늦은 후배 기자들이 부지기수다. 기자 세계의 군기(?)가 해병대나 검찰 만큼이나 견고하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가끔은 그 때문에 곤혹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 고등학교 선배 기자가 나와 친구 사이인 그에게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심한 경우는 세 살 터울까지 ‘야, 자’ 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같은 신문사의 입사 년차가 그토록 강고한 서열의 기준이 된다는 것에 나는 무척 놀랐다. 군대도 아닌데 그런 식의 위계 문화를 보이는 것이 나는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만의 규칙이라니 받아들일 수밖에.
그는 일단 기사를 잘 쓴다. 비문도 별로 없고(이건 기자에게 기본이겠지만, 생각보다 지역 언론의 기자들 중에는 맞춤법이 안 맞은 글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도 정확하게 전달된다. 가끔 자기 자랑을 늘어놓긴 하지만 실력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들이 크게 미워보이진 않는다. 다만 그는 좋지 않은 습관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친구로서 내가 누누이 지적을 하고 질타도 해봤지만 그것을 쉽사리 고치지 못하고 있다. 일종의 주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술만 먹으면 노래방을 가는 것이다. 취흥에 겨워 노래 한 곡 부르러 노래방 가는 것이야 탓할 게 없지만, 그는 매번 다른 목적으로 노래방을 가기 때문에 문제다. 그곳에서 그는 도우미 여성을 불러 매음을 하고는 지갑 속에 있는 돈을 모조리 탕진하고 돌아오곤 한다. 술이 깨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무척 후회하곤 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러한 습관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아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오늘, 사무실 앞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나를 덥석 안으며 막걸리 한 잔 하자고 했고, 나는 그가 전작이 있는 것 같아 망설였지만 너무 간절한 표정이었기 때문에 함께 술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후배 한 명도 그 자리에 동석했다. 술자리는 무난하게 이어져 갔다. 대화도 좋았고 안주도 좋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취기가 돌자 그는 슬며시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사라져 버렸는데, 오늘도 그는 노래방을 찾았을 것이 분명하다. 늘 그런 식이었기 때문이다. 술집 주인인 선배와 나는 그가 마음 붙일 데가 없기 때문이라는 공통된 결론을 내렸다.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지금 별거 중이고, 지방지 기자의 월급이라는 게 빤하니 생활도 그리 넉넉지 못할 것이고, 언론계 메커니즘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옛 시절의 가오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 눈앞의 현실이 얼마나 낯설고 고달팠을 것인가. 그의 버릇은 물론 고약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행동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술꾼들에게는 저마다 나름의 주사가 있는 법이다. 주사가 없다고 강변하는 사람은 그 터무니없는 강변 자체가 주사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쉽게 고쳐지거나 이미 고쳐졌다면 그것은 더 이상 주사가 아닐 것이다. 그는 분명 주사가 있다. 고쳐질 것이 난망한 주사다. 본인 스스로도 그것을 안다. 아는 것은 고치기 쉽다는 말을 나는 믿고 싶다. 나 역시 그의 주사를 끝내기 위해 그럴 듯한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다. 친구야, 이 녀석아. 정신 좀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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