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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계봉 씨의 하루

"진정 화려한 휴가" - 광주에서 기형도를 만나다 본문

일상

"진정 화려한 휴가" - 광주에서 기형도를 만나다

달빛사랑 2008. 11. 6. 01:21

 

 

기억 하나

 

이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내 기억이 아니다. 나의 어머니의 기억이다. 나는 80년 2월생이다. 나의 백일 날, TV를 비롯한 모든 매체에서 불안 불안하던 광주에서 결국 ‘빨갱이 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보도를 급히 타전했다. 언론은 호외와 특보를 통해 쉴 새 없이 ‘전시상황’ 임을 경고했고, 놀란 나의 부모님은 다 차려놓은 내 백일상을 부랴부랴 정리하셨다. 나는 백일 사진이 없다.

 

 

기억 둘

 

고등학교 1학년 때 광주에서는 제1회 광주 비엔날레가 열렸다. 이제는 고인이 된 백남준 선생이 어눌한 말투로 “광주에서 만납시다.”라는 맨트를 날리는 TV 광고를 통해 연신 볼 수 있었다. 다. 백남준 선생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하나로 나는 주말에 광주행 기차를 탔다. 백남준 선생은 결국 볼 수 없었고, 나는 광주에서 하룻밤을 반쯤은 노숙하다시피 지샜다.

 

 

기억 셋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친구와 함께 나는 친구 부모님 차를 훔쳐 전국일주를 했다. 보름쯤 지났을까. 수중에 돈이 똑 떨어졌고, 나는 광주에서 발이 묶였다. 금요일 이었다. 전남대 뒷 편 주택가에 차를 세우고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원만 통장에 넣어줘”

 

함께 있던 친구의 친척이 광주 근처에 살고 계신다하니 거기까지만 갈 요량이었다. 월요일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통장과 도장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ATM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월요일이 되었는데 은행은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해 7월7일 제헌절은 월요일 이었다. 나는 친구와 사흘을 꼬박 초코파이 한 상자와 전남대 수돗물로 견뎌내며 손바닥만한 경차에서 새우잠을 자야했다.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탄 광주행 고속버스 안에서 나는 이 기억들을 떠올렸다. 광주로 떠나기 직전 몇 권의 책을 챙기기 위해 책장을 살피다 무심결에 기형도 산문집을 집어 들었다.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산문집의 부제다. 8월 4일. 우연치 않게 기형도가 광주를 찾은 날은 9년 전 오늘이었다. 나는 기형도와 함께 광주로 가고 있다.

 

기형도가 말한다.

 

나는 지금 떠나고 있다. 휴가는 어제부터 시작되었다. 잠과 혼미한 각성도 하루 만에 권태로 판가름 났다. 오랫동안 참기 어려웠고, 참아왔으므로 몇 일간의 자유가 허용되었을 때 예상대로 당황하였다... (중략)... 사실 이번 휴가에 목적은 있다. 그것을 나는 편의상 ‘희망’이라고 부를 것이다. 희망이란 말 그대로 욕망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나는 모든 것이 권태롭다.

 

1988년 기형도의 광주는 2007년 나의 광주와는 전혀 다르다. 87년 6월 시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냈건만 결국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평화적(?) 정권이양이 이루어졌으니 기형도의 허탈함은 이루 말 못할 것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타고난 탐미주의자였던 그에게 1988년 광주는 희망을 노래하면서 여전히 권태를 호소하게 만드는, 열사의 땅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떨어진 신기루였다.

 

지금은 오후 4시 30분의 폭염. 정치부에 있을 때 취재차 잠시 들러 보았을 뿐, 전라(全羅)는 나에게 미지의 땅이다. 어제 정일군(소설가 장정일 - 편집자주)은 그랬다. 광주에 못갈 것 같다고. 지금 성지순례의 땅이 돼버린 광주로 가는 길이 무슨 속죄의 길이 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라고. 그는 단 한 번도 광주로 가지 않았다.

 

이제 광주로 간다.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그곳은 십자가로 만든 땅인가, 넋들 위에 솟아난 도시인가. 나는 아무런 감정도 예감도 없이 무등(無等)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노태우 이후로 정권이 세 번이나 바뀌면서 광주는 ‘십자가로 만든 땅’, ‘넋들 위에 솟아난 도시’ 혹은 ‘성지’라는 이름을 바꾸려고 무던하게 노력을 해온 것 같다. 80년생인 나의 광주에 대한 기억이 광주 비엔날레로 시작되었음이 그 증거일 수도 있다.(이건 어쩌면 단순히 나의 무지함의 증거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기형도를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기형도를 따라 여행을 가고자 마음을 먹었지만 그의 공허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감당해내기가 두려웠다.

 

 

 

광주 고속터미널은 내가 본 그 어느 대도시 터미널 보다 초라하고 궁핍했으며 무더웠고 지친 모습이었다.

 

기형도가 내렸던 그 터미널 자리에 이제는  대기업의 백화점이 들어와 있다. 현재의 고속터미널 역시 대기업이 올린 현대식 건물이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에어컨 바람 탓에 계절을 망각한 긴소매의 옷들이 매끄럽게 닦아놓은 바닥에 경쾌한 소리를 내며 걸어가고 있었다.

 

 

 

 

비가 왔으면 싶다. 희망은 있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 도저한 삶과 삶들, 이해할 수 없는 저 사람들은 오래전에 나에겐 부재(不在)했을 것이다. 나에게 지금 희망은 어떤 모습일까?

 

광주에 도착하는 날, 하늘은 잔뜩 흐렸고 곧 한두 방울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금남로와 충장로를 천천히 걷다가 일찌감치 낡은 여관에 몸을 뉘였다. 나는 밤늦게까지 잠이 들 수가 없었다. TV를 켜놓고 나는 다시 기형도를 읽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지금 욕망이 사라졌다. 그건 성(聖)도 아니다. 추악하고 덧없는 생존이다. 어쨌든 나는 오래도록 기다려 왔던 탈출 위에 있다. 나는 부닥칠 것이다. 공허와 권태뿐일 것이다. 지치고 지쳐서 돌아오리라.

 

아침 8시, 끈적한 얼굴로 잠에서 깼다. 나는 두통이 심했고, 밤새 TV가 유쾌한 척 비명을 내질러댄 탓이라고 생각했다. 창밖의 빗줄기는 거세져 있었다.

 

 

 

무등(無等)은 날을 흐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가까운 검은 산들을 거느리고 회색의 구름 숲속의 무등은 있었다. 나는 지금 충장로와 중앙로 사이를 가로지르는 금남로 3가와 4가 사이에 ‘충금’ 다방 2층에 앉아 있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다시 금남로로 나섰다. 우산이 고장 나는 바람에 반쯤은 비를 맞으며 충금다방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아직까지 남아 있을 리 없지’

 

여지껏 ‘다방’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낡은 간판 몇 개를 발견했지만, 글로벌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몇 개가 눈에 더 쉽게 들어왔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해가 들기 시작했다. 8월의 태양이 아스팔트를 달궈낸다. 금남로 거리에 아지랑이가 일어난다. 젖은 옷이 불쾌하게 살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이 불볕더위를 잠시 ‘시련이다. 가혹한 댓가다.’라고 생각해 보았다...(중략)...끓는 물에 적셨다 꺼낸 종이처럼 옷들이 고통스럽다. 나의 첫 남도행이 무슨 고행의 제의를 의미하는 것일까. 내 감정은 지극히 평온하고 특유의 격정도 물 밑에 모두 가라앉아 있다.

 

이 사람들이 모두 죽음의 공포를 겪었던 사람들일까. 어찌 보면 그랬다. 어두웠고 흐미하였다. 거리는 복잡했지만 힘이 없이 늘어져 있었다.

 

지난 밤 충장로는 젊은이들로 붐볐다. 네온사인은 가볍고 화려한 불빛을 발하며 ‘나를 사달라’며 유혹해왔다. 유난히 대담해진 올 여름 트렌드 탓에 맨살의 매끈한 탄력이 건강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12시간 만에 다시 찾은 충장로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휴가철이기 때문인지 거리는 한산했고, 죽음의 공포 따위를 상기할만한 것들은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밤 열정의 보상으로, 비오는 일요일의 한적함은 삶의 여유일 뿐이다.

 

 

518번 버스를 타고 망월동으로 향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이 망월동으로 향했다. 그들 중, 중학생 즈음으로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들이 있었고, 영화를 보고 찾아가는지 연신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요원이 어떻고, 김상경이 어쩌고 저쩌고, 재잘재잘. 나는 그들과 더 닮았을 것이다. 내가 80년의 광주를 말한다면 영화 속에 한 장면이 환청처럼 들리는 광주를 말하고 있는 것뿐일 것이다.

 

 

 

만장 같은 격한, 그라나 햇빛에 바삭바삭 마르고 있는 수십 개의 붉고 검고 흰 현수막들과 무덤들이 있었다...(중략)...묘원은 아무도 없었고 나 혼자였으며, 열사(熱沙)였다. 너무 뜨거워 화상처럼 달구어진 내 얼굴 위로 땀이 사납게 흘러내렸고, 그것들이 내 눈 속에 들어갔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앉아서 성자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에게 경배하러 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육체에 물을 묻히고 녹이 슬기를 기다렸다. 서울에서의 나의 행복론은 산산조각 나고 있다. 내가 거듭 변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거듭 변하기 위해 나는 지금의 나를 없애야 한다. 그것이 구원이다.

 

 

다시 해가 나기 시작했다. 내 이마에도 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젖은 신발이 찌걱찌걱 소리를 냈다. 망월동 제 3묘역은 구 묘역으로 불린다. 규모가 작다. 몇 해전, 국립 5.18묘지 성역화 공사가 완공되어 대부분 인근 국립 5.18묘지로 이장되었기 때문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잔디들 앞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묘비에 아로 새겨진 글자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갑자기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햇? 탓인가. 이름을 읽을 수 없는 묘비 몇 개에 몸을 지탱하면서 구 묘역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나는 몹시도 창피했다. 나는 나의 부모님 세대가 창피했고, 그들의 고통 앞에서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내가 몹시도 부끄러웠다.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나도 말이 없었고 여인도 침묵이었다. 지치고 피곤한 얼굴, 누군가 건드려도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햇빛에 검게 탄 촌부...(중략)...그럴 수도 있다. 우리 어머니의 뒷모습과 너무 흡사했고, 그것은 감상(感傷)도 계시(啓示)도 아니었다.

 

기형도는 망월동에서 우연히 이한열의 어머니를 만났다. 나는 버스에서 영화이야기를 재잘대던 소녀들을 다시 만났다. 소녀들은 92년생 이었다. 역시나 영화를 보고 찾아왔고 나와 비슷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녀들에게서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유령의 도시 광주, 그러나 화산의 도시 광주여, 잘 있거라...(중략)...망월동 묘역만을 둘러본 것으로 나의 유적지 순례는 끝난 것인가. 금남로의 몇 구역을 걸었던 기억만으로 나는 광주를 기억할 수 있을까.

 

사람은 과거를 미화해 기억한다고 한다. 하지만 기억해야할 것과 추억해야 할 것은 다르다. 대학교 1학년 때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하나는 이런 말을 했다. “좀 더 과격한 방법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선택할 것이다. 설령 지금 우리의 행동이 잘못 되었다 하더라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네가 기성세대로 불리는 나이가 될 때 까지 지금의 너의 모습을 기억하도록 해라” 나는 광주를 기억할 수 있을까?

 

 

 

나는 돌아가고 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상들을 향해 기차는 전속력으로 달린다. 물 밑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다시 너절하게 떠오르리라...(중략)... 스스로 변화하기. 얼마나 통속적인 의지인가. 그러나 통속의 힘에서 출발하지 않는 자기구원이란 없다.

 

광주역에서 서울행 KTX를 기다리다가 포스터 하나를 발견했다. “KTX타고 명문대 견학및 서울 나들이”라는 제목의 투어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순간 2007년으로 빨려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기형도가 자기구원을 위한 통속적인 의지라고 말했던 '스스로 변화하기'는 결국 이 모양으로 진화했나 보다.

 

 

 

흘러가 버린 나날들에게 전하리라. 내 뿌리 없는 믿음들이 지금 어느 곳에서 떠다니고 있는가를.

 

이 글은 <기형도 산문집 - 짧은 여행의 기록>(살림, 1990)을 재구성 한 것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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