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연쇄, 후배를 연민하며 (6-21-토, 흐림)

정신적 유혹, 육체적 유혹, 금전적 유혹, 명성에의 유혹 등등, 유혹은 다양하다. 그 모든 유혹은 각각 독자적으로 작동하기도 하고 서로 연동되어 작동하기도 하는데, 대개 후자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좋은 차를 갖고 싶어 하는 건 그 차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장하고 싶은 욕망이면서 비싼 차의 재산적 가치 역시 염두에 두는 것이므로 정신적이면서 물질적인 유혹이다. 동시적으로 유혹이 작동하는 것이다.
돈 많은 졸부들이 명성, 명예에 관한 유혹을 강하게 받는 것도 또 유혹의 연쇄라고 할 수 있다. 돈으로 모든 걸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세상이지만, 명예는 돈으로 쉽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더욱 갈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그들이 생각하는 명예는 우리가 사전적으로 알고 있는 자랑스러운 정신의 향기로서의 명예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욕망일 뿐이다. 졸부들은 돈으로 진정한 명예와 교양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만, 결국 그들이 사는 건 부박한 권력욕, 명예욕에 불과한 것이다. 부와 진정한 명예를 다 갖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나의 개인적 생각이다.
심지어 공부하는 사람, 예술가, 도덕적이어야 할 종교인들에게도 유혹은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욕망은 있는 것이고, 그 욕망이 바로 유혹의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망, 1등이 되고 싶다는 욕망, 그래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유혹의 손쉬운 먹잇감이다.
오후에 나는 시를 쓰겠다는 후배 한 명과 한 시간이 넘도록 다양한 주제를 오가며 통화했다. 그와 통화하는 내내 내가 그의 발언에서 읽어낸 것은 시를 향한 순정한 애정이라기보다는 명성에 관한 세속적 욕망이었다. 그는 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시 자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시인이라는 명함을 얻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즉, 그 명함을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욕망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알까? 사실 시가 생략된 자리에 들어차는 시인이라는 명성이 얼마나 덧없고 무의미한 일인가 하는 것을. 시인이라는 직함을 향한 그의 욕망은 다양하고 치명적인 유혹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나의 유혹이 다른 유혹을 불러오는 유혹의 연쇄는 매 순간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그때마다 만족함을 모르는 정신적 허기가 그 자신을 집어삼킬 것이다. 그러니 그가 자신의 영혼을 살리고 싶다면 시인이라는 허명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시 자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혹은 힘이 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