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6-12-목, 맑음)

달빛사랑 2025. 6. 12. 22:43

치과 치료받고 오다 우리 집에 들른 큰누나와 근처에 있는 중국집 ‘전가복’에서 함께 식사했다. 작은누나는 짜장면 큰누나는 볶음밥 나는 흰색 짬뽕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중식이었다. 요즘 누나들과 자주 만난다.❚얼마 전, 작은누나와 대화 중에 내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기가 빨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져. 그냥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아”라고 말했더니, 작은누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거 무척 안 좋은 습관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폐쇄적인 인간으로 변하게 될 텐데……”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모든 사람을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가족들을 불편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장 힘이 되어야 할 가족에게서 불편함을 느끼다니, 이건 무조건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된 것일 텐데, 거기에는 아마도 설명하기 어려운 매우 복합적이고도 다양한 요인이 내재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아내가 없다 보니 집안의 대소사를 동생 내외가 챙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이 점차 누적되어 온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동생 부부가 나에게 눈치를 주거나 생색내지도 않았는데 괜스레 내 쪽에서 자격지심을 느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잔소리도 듣기 싫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함께 밥 먹자는 누나들의 행동도 귀찮았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강퍅해져 온 것이다. 그건 형제로서 누나들이 나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말투는 퉁명스럽기 일쑤였다. 이건 옳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생각을 바꾸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어제오늘처럼 누나들과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 식사하는 것도 그 노력의 하나다. 귀찮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형제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능한 한 자주 갖기로 했다. 사실 내가 주도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므로 그저 누군가의 제안을 기꺼이 따라주면 될 일이다. 그간에는 그것조차 싫고 부담스러웠다. 이제야 철이 드는 것일까. 우리 형제는 모두 완벽한 건 아니다. 저마다 부족한 점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면서 최후로 기댈 수 있는 건 형제밖에 없다는 걸 인생의 고비마다 나는 느끼지 않았던가? 그렇다. 뭐 대단한 게 아니라 그저 그 과거의 느낌을 복원하면 될 일이다. 이렇게 마음을 바꾸고 누나들을 만나니 그녀들의 표정도 무척 밝아졌다. 나 하나로 인해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까를 생각하면 미안하기 그지없다. 아무튼 그래서일까,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처럼 소심했던 큰누나의 표정도 형제들과 함께 어울리며 현저하게 밝아졌다. 보기 좋다. 우리는 행복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