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누나들과 (6-11-수, 맑음)









자주 가는 고깃집인 ‘양촌리’에서 누나들과 함께 점심 먹었다. 작은누나와 함께 식당에 도착하니 아침부터 인하대병원에 들러 (건강검진 결과에 관해) 주치의와 상담하고 온 큰누나가 먼저 와 있었다. 자리에 앉으며 작은누나가 “다 괜찮대? 의사가 뭐래?”라고 묻자, 큰누나는 체념인지 달관인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오랫동안 쇼그렌 증후군과 류머티즘 등 각종 질환을 앓아온 큰누나에게는 새로운 증상이 하나 추가되는 게 그리 낯설지 않은 모양이었다. 불면 날아갈 듯 깡마른 누나의 빗장뼈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큰누나네 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했다. 그리고 매형이 쓰던 캐논 카메라 EOS 600D와 각종 렌즈 세트, 그리고 음악 CD를 큰누나로부터 받아왔다. 그러잖아도 늘 고급 카메라 한 대 갖고 싶었는데, 매형 유품으로 그 소망을 실현하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특히 값비싼 전문가용 렌즈 세트까지 얻게 되어 기뻤다. 집에 돌아와 ‘매형, 잘 쓸게요’ 카메라와 렌즈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혼잣말로 매형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매형이 장비 욕심이 꽤 컸던 것 같다.
며칠 후에는 매형의 오디오 시스템과 엘피(LP)들도 가져올 예정이다. 오늘 누나는 “동생아, 2층에 있는 매형 오디오랑 엘피도 가져가라”라고 했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작은누나가 옆에서 “클래식 판은 나도 좀 가져갈게” 하더니 당장 2층으로 올라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3장이 세트로 묶여있고 해설집도 포함된 클래식 엘피 세트 중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 세트를 가지고 내려왔다.
작년에 갑작스레 작고한 음향기기 마니아인 매형은 고가의 오디오시스템을 여러 개 갖고 있었다. 오디오 관련 잡지를 정기 구독하고, 동호인들끼리 음감(音感) 모임도 여는 등 진짜 오디오에 진심이었던 매형은 총 4개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누나가 거실에서 사용하고 있고, 하나는 막내인 동생이 가져갈 예정이며, 나머지 두 세트는 내가 가져올 예정이다. 조카들이 가져갈 줄 알았는데, 누나 말로는 생각 없으니 삼촌들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기특한 것들!
아무튼 장비 욕심 많았던 매형 덕분에 고가의 카메라와 오디오 세트를 얻게 되어 고인에게 미안할 정도로 고맙고도 기쁘다. 누나는 그것들(매형의 물건들)을 볼 때마다 매형 생각이 나서 마음이 심란하다며 시간 되는 대로 빨리 가져가라고 성화인데, 일단 트럭을 빌려야 할 듯싶어 혁재에게 전화했더니, 혁재는 “은수가 트럭 있으니까, 은수 시간 될 때 들를게요” 했다. 주중에는 은수가 현장 일을 하기에 일요일쯤에나 가져올 수 있을 듯. 집에 돌아와 오디오 놓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방 정리를 다시 했다. 나이 들어 공부할 게 많아진 것 같다.
섬유근육통의 원인과 치료 방법, 생활의 팁 등을 인터넷에서 검색한 후 자료를 정리해 큰누나에게 보내주었다. 이전에는 누나에게 무척 무심했던 사람이, 많은 걸 선물 받은 날에야 비로소 속 보이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진심으로 누나가 걱정되어 자료를 찾아보다가, 이 병증의 치료에는 무엇보다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는 구절을 읽고 누나에게도 필요한 내용이라고 판단해 보내준 것이다. 카톡을 보내자마자 “늦은 밤에 안 자고 뭐 해? 고마워”라는 답장이 왔다. ‘그러는 누나는’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답장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