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봄날은 간다 (4-26-토, 맑음)

달빛사랑 2025. 4. 26. 23:20

 

뜬금없이 뭔가가 무척 당기는 날, 그런 날이 있다. 하지만 혼자 살다 보니 주문해서 먹기가 쉽지 않다. 물론 최근에는 쿠팡이츠나 요기요 등 전문 배달 업체가 생겨나면서 한 그릇(1인분)도 배달해 주는 식당이 생겼지만, 여전히 최소 주문 금액이 정해져 있거나 한 그릇은 배달하지 않는 곳이 더 많아 불편하다. 그래서 주문할 때는 매번 2인분을 주문한다.

 

각설하고, 오늘은 왜 그런지 모르게 오후가 되면서 족발이 무척 당겼다. 만수역 앞 ‘장수족발’은 내가 먹어본 족발 중 가장 맛있는 집이다. 문제는 앞다리를 먹고 싶은데, 앞다리는 대(大)자로만 팔아서 값이 제일 비싸고, 값도 값이려니와 나 혼자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또 족발은 식당에서 사 왔을 때 바로 먹어야 맛있지, 먹다 남겨두었다가 다시 먹으면 그 풍미가 줄어든다. 아무튼 혼자라도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후배 장(張)에게 연락했다.

 

최근 알바를 시작한 장(張)은 5시쯤 일이 끝나므로 그 시간에 맞춰 전화했더니 오늘은 주말이라 일찍 퇴근해 홈플러스에서 쇼핑 중이라고 했다. “족발 같이 먹을까 하고 전화했어.” 했더니 “형, 우리 동네로 오실래요. 내가 술 살게” 했다. 결국 6시 30분쯤 제물포에서 장을 만났다. 그는 만나자마자 “형, 족발도 좋지만, 제물포역 북광장 쪽에 유명한 갈빗집이 있는데 가성비 끝내줘요. 거기 한번 가보실래요” 했다. 그래서 북광장 쪽으로 넘어가 갈빗집에 들렀는데, 유명한 집인 게 사실이었는지 빈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남광장 쪽으로 넘어와 애초의 생각대로 족발집을 찾아갔다.

 

우리가 들른 ‘황제족발’은 2년 전 설 명절에 혼자 사는 후배 병균에게 술 사주려고 들렀던 곳이었다. 맛과 질은 괜찮았다. 가격도 우리 동네보다 저렴했다. 하지만 역시 ‘장수족발’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둘이 특대(39,000원)를 주문해서 먹었다. 주문이 많은 집이라서 그런지 홀에서 먹으면 오히려 10% 할인해 주었다. 배달료가 들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소주 2병을 나눠 마신 후 식당을 나왔고, 근처 정육점에서 육회를 주문해 장의 집으로 가서 2차 했다. 남은 족발은 내가 포장해서 가져왔다.

 

장(張)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왜 자꾸만 장이 자기 집에 가자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난번 갔을 때는 보이지 않던 삼나무 책꽂이 3개가 눈에 띄었다. “형, 얼마 전에 새로 샀어요. 냄새 좋지요?” 하며 무척 뿌듯해했다. 방의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 책 대부분은 책상 주변 이곳저곳에 볼품없이 층층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조명과 안마의자도 새로 산 모양인데, 실내가 안 본 사이에 꽤 세련되게 변했다. 장이 왜 그리 열심히 알바를 하는지 알 거 같았다.

 

장(張)의 집에서는 육회 안주에 대만산 양주(싱글 몰트)를 마셨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작은 병이어서 두어 잔씩 마시니 이내 바닥을 드러냈다. 장은 한 잔 더 하자고 했으나 (그는 “형이 술 마시자고 해놓고 이렇게 애매하게 마시면 어떡해요. 책임지세요” 하며 웃었다) 나는 그만 마시겠다고 했다. 결국 그는 집에 가려는 나를 따라나서 기어코 소주 두 병을 사서 돌아갔다. 사실 나는 오늘 술 생각보다는 그저 족발을 먹고 싶었을 뿐이다. 집 근처에 왔을 때,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살까 하다가 꾹 참았다. 대신 포장해 온 남은 족발을 넣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맛이 기가 막혔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여니 상큼한 봄바람이 속도감을 느낄 만큼 빠른 속도로 방안에 들어찼다. ‘아름다운 봄밤이네’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렇게 저렇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 춘소 일각 치천금(春宵一刻値千金), 소동파의 말대로 그야말로 천금과 맞바꿀 만큼 아름다운 봄밤이다.